우리나라에서 만들어낸 신품종 배나무 묘목이 국내보급도 되기 전에 중국
으로 불법유출된 사실이 밝혀졌다.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가 지난 98년 육
성한 '조생황금'이 산둥(山東) 배 주산단지에서 버젓이 재배되고 있다는 것
이다. 누군가가 농진청 신품종 시험포장에 접근해서 묘목을 입수한 다음 중
국으로 싣고 나가는데도 몰랐다는 한심한 얘기다. 새로운 과일품종에까지
손을 뻗쳐 '농업스파이'를 동원하는 중국인들이 우선 놀랍다. 그러나 치열
한 '종자전쟁'의 시대에 애써 가꾼 신품종을 눈뜨고 도둑맞는 우리의 허술
한 품종보호시스템은 더욱 놀랍다.
 원예연구소 시험포장은 도대체 어떻게 관리를 했길래, 외부인이 묘목을
캐거나 가지를 꺾어갈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내부 공모자가 묘
목을 넘겨주기라도 한 걸까. 석연치 않은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공항
이나 항만의 검색과 농산물 수출심사절차에도 구멍이 뚫려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붓뚜껑에 숨긴 씨앗도 아니고 묘목을 가져나가는데도 적발해 내
지 못한다면 문제다. 인력 장비타령 이전에 국내 토종이라든가 이번 경우
와 같은 신품종 반출은 어떻게든 철저히 막아야 하는 일 아닌가. 답답하다.
 '조생황금'은 수확시기가 기존 황금배보다 10일 정도 빨라 내수시장에서
유리하며, 미국·캐나다 수출가능성도 높은 품종이라고 한다. 중국이 '조생
황금' 배를 해외로 수출할 경우 우리가 로열티를 요구할 수는 있다니 그나
마 다행이지만, 이것도 앞으로 2년 정도 기간이 걸리는 품종보호 등록이 성
공적으로 완료됐을 때의 일이다. 그 사이 중국산 배가 수출시장에서 호평
을 받고 있는 한국배의 자리를 잠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리먹골
배 안성배 등 유럽시장에서 '황제과일'이라고까지 불리며 일본 미주 유럽으
로 판로를 넓혀가고 있는 우리 배 재배농가들에게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소
식이다. 특히 일본시장을 놓고 우리배와 중국산 '조생황금' 배가 치열한 경
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지만, 이제라도 '조생황
금' 반출경위를 철저하게 재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관련자와 책임소재를
명백하게 따져 물음으로써 제2, 제3의 '조생황금' 사례는 막아야 할 것이
기 때문이다. 유전공학을 이용한 품종개발의 속도가 갈수록 가속화하는 마
당에 재주는 우리가 부리고 이익은 남이 챙기는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