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를 덮친 화마가 귀중한 목숨들을 앗아갔다. 대부분의 가정이 고향집에서 오순도순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할 시간이던 1일 오후 7시30분께 인천시 남동구 구월1동 엠파이어 웨딩홀 화재현장에서는 인명을 구하러 불길 속으로 뛰어든 소방관 2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불은 추석날에도 일어날 수 있으며, 우리 곁에는 명절에도 24시간 생명을 걸고 불을 잡기 위해 애쓰는 소방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건치고는 그 대가가 가혹하다. 지난 3월 서울 홍제동 상가화재현장에 뛰어들었다가 6명의 소방관이 숨진 기억이 생생한데, 또 이같은 사고소식을 듣는 우리의 심정은 비통하다.
숨진 두 소방관의 사연도 가슴 아프다. 구용모(具龍模·49) 소방장의 경우 13평 연립주택에서 팔순 노모를 모시고 사는 성실한 가장이었다. 그는 화재현장에서 입버릇처럼 후배들에게 “내가 먼저 들어가기 전에는 들어오지 말라”며 앞장을 섰다고 한다. 그는 이날도 동료가 차례를 지내러 갈 수 있도록 교대근무를 자청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원(李東垣·31) 소방사 역시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서도 남을 위하는 삶을 살기 위해 소방관의 길에 들어선 의지의 젊은이였다. 환경미화원 생활로 아들을 뒷바라지 해온 이 소방사의 부모나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구 소방장의 고3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의 오열에 무어라 위로의 말을 찾기 힘들다.
이처럼 소방관들의 희생은 계속되고 있지만, 소방관들에 대한 처우나 구조적인 문제점은 거의 바뀌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홍제동 사고 이후 음지에서 묵묵히 고생하는 소방관들에 대한 관심이 부쩍 고조되었으나, 정부의 개선책은 의무소방관제 실시와 방호활동비 월 10만원 인상이 고작이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소방관들은 여전히 1인당 담당인구가 미국보다 10배나 많은 상황에서, 낡은 진압장비를 가지고 용기와 신념에만 의지한채 화재현장을 지키고 있다.
또한 진압과정에서 화상을 입어 입원치료를 받더라도 보상금은 커녕 의보혜택도 받지 못하는 상당수의 외국제 화상치료약값 부담에 시달리는 딱한 형편이다. 거듭되는 소방관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다. 소방청 독립을 비롯 소방공무원들이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우선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다시한번 순직한 소방관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