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함에 따라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임기말에 대통령이 평당원으로서 백의종군을 선언했지만, 정쟁에서 벗어나 경제회복과 남북관계에 전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일단 김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사퇴는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않은게 현실이다.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여당 내부마저 차기 대선경쟁이 조기에 촉발, 날이 갈수록 총재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상황을 강하게 의식했을 법하다.
김대통령의 총재직사퇴 단안은 무엇보다도 재보선 패배후 국정전반에 대한 쇄신요구로 촉발된 당내 갈등국면을 정면 돌파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남은 1년3개월의 임기동안 김대통령은 당내의 복잡한 사정에 연연하지 않고, 야당과의 정쟁에도 휘말리지 않는, 초연한 입장에서 국정에만 전념할 수 있는, 초당적인 위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통령의 고뇌에 찬 이번 결단을 환영하는 바이다. 그동안 국정의 책임자이며 당의 총재로서 최근에 빚어진 일련의 사태와 관련, 자유롭지 못했던 때문이다.
이제 김대통령은 집권당 총재라는 직함이 야당 공세의 빌미가 되어 오히려 국정운영의 걸림돌이 되는 현 정치구조하에서 자유롭게 됐다. 나아가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는 한편, 현실정치판에서 한걸음 비켜서서 야당의 협조를 얻기가 수월해졌다. 김대통령이 야당을 국정의 진정한 동반자로 인정하여 협력을 얻게되면 5년 단임의 레임덕도 극복하면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집권당이라는 울타리 배경을 포기, 향후 김대통령의 주변에서 벌어질 수도 있는 돌발사태에 대해 기민하게 대처하기 어려운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민주당은 실질적 지주인 김대통령이 총재직을 사퇴함으로 인해 당분간 구심점을 잃고, 대선 조기 과열경쟁에 휘말릴 소지가 높다. 민주당이 오늘의 위기를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내년 대선에서의 국민지지 여부가 달려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사실 오늘의 경제적 위기도 그동안 정부가 지나치게 정치권만을 의식해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며 적기에 정책을 집행하지 못하고 실기한 데도 원인이 크다. 이제 정부는 오직 국익만을 염두에 두어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고 국정에만 전념해주기 바란다. 우선 정기국회의 예산 법안처리 등의 현안에 대해 초당적 협조를 받을 수 있도록 대화와 이해를 넓혀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