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재배정 파문이 심각하다. 예상했던대로다. 지난 16일 재배정에서 원치 않았던 학교로 배정된 학부모들이 경기도교육청 등으로 몰려가 격렬하게 항의하는 소동이 계속되고 있다. 주말임에도 철야농성까지 벌어졌다. 얼마나 분노했는지 차를 몰고 닫힌 교육청문으로 돌진한 학부모도 있었다. 입시가 '전쟁'으로까지 불리는 상황에서 자녀의 학교배정은 '학업의 생사'가 달린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파문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학생이 4개도시에 2천1백여명이나 된다. 학부모들은 벌써 자퇴·전학을 얘기하고, 집단소송도 불사할 태세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수많은 학생들이 이미 돌이킬 수없는 상처를 입었다.
이들에게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지 모를 지경이다. 하지만 더 안타깝고 답답한 것은 해결방법을 찾을 길이 막막하다는데 있다. 지금 프로그램으로 또 재배정을 한들 결과는 마찬가지일 터이다. 프로그램을 바꿔 전면재배정하는 일은 시간상 불가능하고, 더 큰 혼란을 가져올 게 분명하다. 또한 그렇게 해도 불이익을 받는 학생이 나오지 않도록 할 방도도 지금으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학부모들이 이를 모르지 않으면서도 거세게 반발하는 것는 교육행정 전반에 관해 쌓여 있던 깊은 불신이 터져나온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도교육청의 수장과 관계자들은 이번 파동의 이러한 본질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번처럼 교육행정을 직접 겨냥한 거센 질타는 없었다. 교육행정 불신이 얼마나 심각한지 서울에서도 배정을 못믿겠다는 학부모들이 속출하고 있고, 경기도의 경우 중학교 배정에 대해서도 일부 학부모가 의문을 나타내는 판이다. 이런데도 담당 과장·국장만 직위해제하고 전산업체에 책임을 지우고 마무리하겠다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애써 외면하는 미봉책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설령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며 현상황을 넘길 수 있다 해도, 해마다 고교신입생 배정을 두고 극심한 진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아니, 앞으로 전학을 비롯한 학사관리에서도 자신에게 조금만 불리하면 도교육청을 걸고 넘어지는 학생·학부모가 속출할 텐데, 이를 어떻게 감당할 셈인가. 상황을 모면하고 보자는 발상이 오늘의 불신을 불러왔다고도 볼 수 있다. 교육은 계속돼야 한다. 그러므로 이 불신을 근본적으로 털어버릴 수 있는 획기적 전기가 절실하다. 교육청의 고위책임자들은 심사숙고해서 용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교육불신, 누가 책임져야 하나
입력 2002-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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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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