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朴昇)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하면서 터뜨린 일성(一聲)이 한은 독립과 관련한 것이었다. 총재가 바뀔 때마다 중앙은행의 독립 의지가 천명되어 온 건, 역설적으로 말해 아직도 이땅에 관치경제의 그물이 넓고, 또 깊게 드리워져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말해두고 싶다. 그런 맥락에서 신임 총재의 취임을 계기로 하여 이번에만은 명실(名實)을 함께 한 한국은행 독립이 이뤄져, 두번 다시 이 낡은 명제가 새 총재 취임사에서 거론되지 않기를 빌어 둔다. 본란이 금리(金利)의 인상 여부와 관련하여 이렇듯 한은 독립이란 해묵은 화두(話頭)를 쳐들고 나온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니다. 엊그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은이 콜(금융기관 간 초단기자금거래)금리를 현재의 수준(4%)으로 유지하기로 한 것과 관련하여, 이것이 혹은 행정부의 '입김' 탓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에 본란도 관심을 표시해 두고 싶은 것이라 할 만하다. 물론 박승 총재는 앞으로의 통화정책 방향을 선회할 뜻을 비치긴 했다.
종래의 경기부양 중심에서 중립적인 통화정책으로 전환할 걸 선언한 것이 의미없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염려하는 건 이로써 금리인상의 '타이밍'을 놓치게 될는지도 모르리란 불안감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다는 점이라 할 만하다. 한은 측은 지금 경기가 내수 일변도, 그것도 부동산시장 과열 등으로 달아오르고 있는 이상징후를 인정하면서도 투자와 수출의 부진을 들어 본격적인 경기회복 국면으로 들어선 것은 아니란 진단을 내놨다. 이런 분석에 우리로서도 고개 자체를 돌리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민간소비가 지금 너무 과다하게 부풀려지고 있고, 아파트 청약 열기 같은 것이 상징하는 부동산 투기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현실에 한은이 둔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또 한번 말해 두지만, 지금의 경기양태(樣態)를 너무 도식적으로 분해하여 공식을 대입하듯 통화정책을 구사하려다간 그 전환의 시기를 일실하게 될 염려가 없지않다. 가계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개인 파산자가 속출하게 된 것도 가벼이 봐 넘길 수 없는 사회문제로 떠올라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하필 정치의 계절과 맞물려 과소비 풍조가 확산되어 갈 조짐이기도 하다.
상징적으로라도 지금 당장 콜금리를 조금 올려 줄 필요가 있다. 기업들 쪽에서도 다소간의 인상은 수용할만한 여력이 비축되었을 성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