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도 공중전화를 사용한다. 냉전시대 첩보 영화이야기가 아니다. 21세기 IT 강국을 지향한다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물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퍼져가고 있는 도청공포는 그 도를 넘고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정형근 국회의원과 국가정보원이 있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고, 누가 거짓인가를 확인하는 것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도청된 내용에 불법과 합법이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한 판단도 간단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과연 국가정보원이 도청한다는 정 의원이 폭로가 사실인가 하는 점에 있다. 국가정보원이 도청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헌법위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는 많은 기업이나 공무원들의 대응방식에 이미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간부가 친구아들 이름으로 휴대전화를 쓰고, 변호사 사무실이 직원전화를 모두 교체한다는 현실은 그 진위와 관계없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짐작케 한다.
현직 장관도 경찰도 믿는다는 도청 현실을 보면서 국민들은 묻고 있다. 예외적으로만 감청을 허용하는 법치국가원칙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불법도청에서 시작된 불신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과 추가적 사회비용은 과연 얼마인가.
또 다른 차원에서 국가정보원은 과연 믿을 수 있는 국가기관인가 하는 점이 국민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물론 면책특권을 이용한 일부 국회의원들의 폭로를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가최고정보기관의 정보가 그토록 쉽게 유출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국가기관이나 헌법기관은 정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헌법과 법률에 정한 대로 복무해야 한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일고 있는 도청공포와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생각할 때 문제의 당사자인 정 의원과 국정원의 책임 있는 해명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면책 특권을 이용한 폭로가 아니라면 정 의원은 그 진실을 정치적 공세차원을 넘어 헌법위반 문제라는 사실에 기초하여 사건의 진실 규명에 나서야 한다. 만약 국정원의 주장대로 그런 사실이 없다면 관련 자료와 시설 등에 대한 공개와 함께 납득할 만한 조치를 해야 한다. 신뢰와 기강이 무너진 기관과 사회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권력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과 국가다.
도청공포가 확산되는 사회
입력 2002-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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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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