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아슬아슬한 핵 모험외교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를 재검토해 볼 때 제네바합의 파기를 볼모로 무언가를 얻어내겠다는 의도가 역력히 읽힌다. 하지만 그것이 미국 행정부의 심상치 않은 강경기류와 맞부딪치면서 한반도가 예기치 못한 비극적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 또한 부쩍 높아졌다. 북의 이번 선언이 핵 개발계획 시인, 미국의 중유제공 중단 결정, 미사일 화물선 나포 사건 등 최근 발생한 일련의 북-미 줄다리기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는 하지만, 제네바합의를 그래도 북핵을 억지하는 유효한 틀로 간주해온 우리로서는 마치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핵위협을 과장 또는 강조함으로써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지난 94년 이래 이같은 대미 벼랑끝 외교를 통해 실리를 얻어왔다고 해서 이번에도 그같은 모험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누구도 하기 어렵다. 설령 북의 선택이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궁지에 몰린 집단의 최후 선택이라 하더라도, 평화를 위협해서 평화를 얻거나 민족의 운명을 백척간두에 세움으로써 실리를 취하는 방식은 어떤 명분으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러므로 북은 제네바 합의 파기 선언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마찬가지 논리로, 북핵을 정도 이상으로 부풀리려는 미국과 국내 일각의 시각도 경계해 마땅하다. 북의 의도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사태의 추이를 정밀하게 지켜보면서, 합리적이고 평화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북핵에 대한 올바른 대응방식이라는 것은 94년 위기 이후의 경험이 가르쳐 주는 바다. 전쟁위기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낙관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안되지만, 평화라는 미명으로 억지 분쟁을 유도하려는 의도에 끌려다녀서도 안된다. 더구나,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냉전적 안보논리로 반사이익을 얻으려 한다거나, 표를 의식해 사태의 축소 해석에 급급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북의 선언이 최악의 시나리오일지, 국면전환용 카드일지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북이 미국과의 협상여지를 열어두고 있다는 것만큼은 명백하다. 제네바합의의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다. 우리가 미국과 공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선은 그들이 평화로이 결자해지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