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을 잃었다. 마치 불법 유흥업소를 연상케 하는 좁은 통로. 허술한 전기 배선. 유독가스를 배출하는 스티로폼 내장재.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그 어두운 공간에서 아이들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 했을 것이다.
순간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이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지금도 귓가를 때린다. 모두 어른들의 잘못 때문이다. 대구지하철 참사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일어난 화재는 어른으로서 우린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또 한번 죄를 지은 것이다.
26일 밤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난 화재는 '금메달 제일주의'로 인한 지나친 훈련과 턱없이 부족한 학교체육예산, '금메달 제조기'를 부추기는 체육계의 풍토와 입시현실, 여기에 어른들의 안전의식 부족이 원인이었다.
좋은 성적을 올려야 축구명문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고 전국대회 4강에 들어야 인문계고교진학자격이 주어지며, 고교생때도 전국대회 4강 또는 8강에 들어야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시스템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선수는 물론 코치 학부모는 시달린다. 이 때문에 정규수업이 끝나고 운동부의 훈련을 실시하는 지침이 마련되어 있지만 이를 지키는 곳은 거의 없다.
체육예산이라는 것이 초등학교에는 전혀 지원되지 않는 것도 이번 사고의 원인중 하나다. 초등학교는 공식적인 예산이 없기 때문에 학생복지기금이나 학부모의 성금으로 충당한다. 숙식비는 물론 코치 월급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합숙소의 환경은 사고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한국 초.중.고교 운동부의 현실이다. 현재 경기도에만 초등학교 51개, 중학교 36개, 고등학교 23개 등 100여개의 축구부가 있지만 대부분이 이처럼 형편없는 환경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성적 지상주의에 빠진 어른들이 만들어낸 기묘한 구조로 인해 우리는 또다시 8명의 어린 꿈나무를 잃었다.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하고 교육부총리가 '철저한 안전점검'을 지시했지만 왠지 공허하게 들린다.
이제 초등학교의 경우만이라도 방과후 활동으로 운동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클럽활동으로 학교체육이 바뀌어야 할 시점이다. '운동기계'가 아니라 진정으로 운동의 '꿈나무'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제 더이상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후진국같은 허무맹랑한 대책을 듣는 것도 지겹다.
학원스포츠 운영, 이대론 안된다
입력 2003-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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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2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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