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양주에서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양의 1주기 추모일이다. 부모의 가슴에 묻고 넘어가기엔 그들의 죽음이 너무 비극적이었으므로 애도의 물결이 넘친다. 그들의 죽음은 이제 21세기 초엽 한국현대사의 한 상징이 되었다. 수십만 수백만개의 촛불로 그들의 넋을 되살리려는 흐름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한국 정부도, 주한미군사령관도 이들의 희생이 갖는 의미를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고건 국무총리는 1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두 여중생의 '불행한 사고'가 한·미 양국간 관계 개선과 발전에 값진 교훈을 남겼음을 지적하고, 평화적이고 질서있는 추모행사 진행을 당부했다. 리언 러포트 사령관도 “비극적 사고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통감하며 진심으로 깊은 사과의 뜻을 다시 한번 전한다”는 추모성명을 내놨다. 우리는 이들의 추도사에 담긴 진정한 슬픔과 우려를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추모일을 하루 앞두고 전해진 의정부발 기사(본보 12일자 16면)는 미선·효순양의 희생이 정말 '값진 교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다시 생각케 한다. 기사에 따르면, 장갑차 사고 이후인 지난해 8월 주한미군 관련 각종 피해 처리를 위해 경기도 제2청에 설치된 주민상담센터에 지금까지 9건의 민원이 접수됐으나 단 1건만 해결된 채 나머지는 모두 처리가 미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술취한 미군병사 3명이 남의 집 지붕 위를 걸어다니며 50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입혔는데도 미군측은 현장조사만 한 채 3개월이 넘도록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여중생을 처참하게 죽음으로 몰아넣은 미군병사들이 '미국식 재판절차'에 따라 무죄선고를 받고 본국으로 돌아갔듯이, 만취 행패 미군들도 출국준비 중이라는 소문마저 들려 피해자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소파(SOFA) 규정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이렇듯 명백한 피해에 대해서마저 이 지경이라면 지난 1년 동안 무엇이 개선되고 바뀌었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두 여중생의 안타까운 죽음을 감정적 반미의 상징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에 결코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추모물결의 밑바탕에 자리한, 대등한 한·미 관계를 요구하는 국민의 여망마저 '현실과 국익'을 볼모로 비켜가서도 안된다. 저 촛불들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 때 촛불은 횃불로, 거대한 분노로 타오를지 모른다.
추모 1주기, 무엇이 바뀌었는가
입력 2003-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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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1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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