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역 중요 현안을 주민투표로 결정짓도록 하는 주민투표제를 도입하기 위해 올해 정기국회에 주민투표법안을 제출한다고 밝혔다. 주민투표제 도입은 지방자치 제도의 완결을 뜻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깊다. 지방의회와 단체장이라는 대의기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방자치의 문호를 주민에게 개방함으로써 본래 목적인 주민 자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민주주의자라면 이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미숙한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부작용을 초래할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행자부는 주민투표법 초안에서 주민투표 대상을 쓰레기 매립장 등 공공시설 설치, 읍·면·동의 통폐합과 분리, 사무소 소재지 변경, 기타 조례에서 정하는 사항 등 4가지로 정해놓았다. 하나같이 이익집단이나 시민단체간의 갈등, 이웃 지자체 사이나 자치권내 소지역간의 반목을 유발시킬 수 있는 사안들이다. 특히 지역내의 특수한 갈등 현안을 조례를 통해 무한정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도록 한 점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모든 현안을 주민투표에 부치는 형국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래서는 쓰레기매립장 등 혐오성 공공시설물은 입지를 찾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핵폐기물처리장의 경우처럼 현금 보상 등 비상식적 요구가 만연할 수도 있다. 자치 이상의 실현에 집착해 자치 행정의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는 꼭 방지해야 한다.

국민의 전반적 정치 불신이 심화된 현실에서 주민투표제가 지방의 대의정치 기반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할 대목이다. 주민 대표들이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해야 할 많은 사안들이 주민투표에 맡겨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정치적 이해와 집단이기에 따라 주민투표가 난무하고, 소신보다는 주민투표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단체장의 무소신 행정이 극성을 부릴까 두렵다. 다시말해 주민투표제가 지역주민의 갈등을 통합하기 보다는 갈등을 세분함으로써 주민 참여 자치의 대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민주주의 학습·비용론을 앞세우거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랴는 식의 밀어붙이기 행정에서 벗어나, 제도 실시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게끔 주민투표제를 정제하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지방자치가 고도로 발달한 서구에서도 주민투표제가 많은 부작용을 빚어내는 현실을 타산지석으로 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