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은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비극이다. 더 큰 걱정은 정 회장의 죽음으로 남북간의 경제협력이 교착상태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벌써 부터 불길한 징조가 보이고 있다.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를 비롯한 북한의 남북교류 관련 단체들은 5일 정 회장의 비극적인 죽음을 애도하는 조전을 보내왔으나, 아태평화위는 하루 전날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일정기간 금강산관광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표면적으로 고 정 회장에 대한 추모를 이유로 내세우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정 회장 사망 이후 남북교류에 대한 우리측의 의지를 타진하자는 뜻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정부 이후 활발해진 남북교류는 민족화해와 남북통일이라는 거창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경협사업에서는 민간이 주도하는 상황이 지속돼왔다. 특히 현대는 대북 경제협력의 창구를 자임하면서 남북 경협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98년6월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방북은 2년후 남북정상회담의 기반이 됐으며 이후 아들인 고 정 회장에 의해 유지가 이어졌다.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등 현대의 대북투자사업은 일개 기업의 이윤추구 사업이라기 보다는 한반도의 평화공존 위한 민족사업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대북 경제협력사업이 정 회장의 비극적인 최후로 막을 내린 지금 우리는 심각한 자괴감에 빠져있다. 사업의 성격상 당연히 정부가 주도했어야 할 남북 경협이 한 기업인의 죽음으로 흔들리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납득하기가 힘들다.

남북경제협력도 사업인 이상 기업은 이윤을 추구했어야 함에도 자기 자본을 다 까먹을 정도로 현대아산이 희생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다. 또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고 남북 경협이라는 대의명분을 추구했던 기업인이 결국은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특별검사와 검찰에 불려다니다가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상황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는가.
 
남북 경제협력은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 방법을 바꿀 때다. 정부가 남북경협의 틀을 만들고 그 안에서 기업들이 합리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특정 정치인과 기업들의 영웅주의적 희생보다는 남북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경제협력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할 일을 대신하다 좌절한 고 정몽헌 회장의 영면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