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당이 수많은 공약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정부가 잇따라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번 총선은 부정과 부패의 사슬에 목이 졸려 사실상 사망한 20세기 정치의 틀을 폐기하고 새로운 세기에 적합한 새정치의 틀을 마련하는 계기이다. 새정치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정치권의 각성으로 역대선거에서 볼수 없는 공명선거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 이때문이다. 따라서 무차별적인 공약(空約) 경쟁을 벌이고 선심정책 시비를 일으키는 일은 새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이다.
 
여야 정당이 공약(空約) 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표를 끌어모을 정당의 정체성이 없는 상황에서 표심을 유혹하기 위해서이다. 수십만 수백만 일자리 창출 공약이나 수백만호의 임대아파트 공급 약속, 농어촌 고교생 교육비 전액지원, 재해복구비 대폭 상향조정, 군복무 단축및 사병봉급 대폭인상과 같은 공약은 환상적인 만큼 공허하다. 하나 같이 실업인구와 농촌인구, 도시서민, 청년층 공략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남발된 장미빛 약속이다. 실천방안이 없는 공약(空約)은 일종의 정치사기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사회·경제적 이익에 따라 투표를 결정해야 하는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최근 정부가 잇따라 발표한 경제정책이 선심정책 시비를 겪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노동부가 공공 부문의 비정규직 근로자 중 10만여명을 정규직화하겠다고 나섰다가 타 부처의 반발로 유야무야 된 경우를 보면 정책을 통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정권의 구태가 여전하다는 의심을 거둘수 없다. 신용불량자 지원대책, 서비스업 지원대책, 특별소비세 인하, 창업투자 지원방안도 같은 의심의 눈길을 받고 있다.
 
정치권이나 유권자 모두 이번 총선에서 국회를 대의민주주의의 진정한 주체로 새롭게 세워야 할 공동의 의무를 지고 있다. 정당은 자신의 이념적 정체를 분명히 하고 유권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투표한다면 대의기구인 국회를 구성하는 정당의 체질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양식있는 인사들이 유권자들에게 이번 총선과 탄핵정국을 분리해 판단할 것을 호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야 정당은 공약(空約)은 폐기하고 이념적 근거와 실천방안이 분명한 공약(公約)을 제시하고 경쟁해야 한다. 정부도 선심 시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성이 지배하는 과거의 선거행태를 벗어던지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