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1개여단을 차출해 이라크로 배치한다는 계획은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부시 미국대통령이 직접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로 양해를 구했고 노 대통령은 이에 동의했다. 특별한 국제정세 변화나 외교적 사정이 없는 한 주한미군 1개여단이 한국을 떠나는 것은 확실하다. 특히 양국간에 차출 부대의 복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번 미군 차출이 단순히 이라크 전선에 필요한 인력수급 차원이 아니라 미국의 해외주둔군 재배치 계획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감축의 전조라는 것이다.
 
국민이 충격에 빠진 것은 당연하다. 미군 주둔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갑작스러운 국가 방위전력의 변화는 모든 국민에게 중대한 관심사일 수 밖에 없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결정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점도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노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국민이 탄핵국면을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다짐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노 대통령과 정부 쪽은 차치하고서라도 여야 정치권과 국민들은 아무런 사전 준비없이 중대한 논쟁거리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벌써 부터 보수진영과 진보진영간에 안보공백론의 타당성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고 이는 곧 국민적 논란의 대상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래서는 안된다. 적어도 국가안보에 대한 논의이다. 냉철한 현실인식에 근거한 논의와 이에 근거한 국내외적 대응이 필요하다. 감성적이고 비합리적 논거를 앞세워 막연히 안보공백론을 강조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자주국방론에 입각한 미군철수론 또한 너무 낭만적인 발상이 아닌지 경계해야 할 것이다. 만일 국민 사이에 이런 주장들이 원색적으로 부딪히고 정쟁으로 비화되면 그 자체가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는 사회불안을 조성할 수 있다. 이점을 명심해야 한다.
 
어찌보면 이번 주한미군 차출 사태는 새롭게 출발하는 노 대통령의 리더십과, 상생정치를 다짐한 정치권의 국민통합 능력을 시험해볼 수 있는 첫번째 관문이다. 대통령과 여야 정당은 일단 주한미군 차출 및 감축 이후의 안보환경 변화 및 대책에 대한 논의의 장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여야 정당에게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정당들은 이를 근거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을 진정시킬 수 있고 상생정치의 가능성을 열수 있다. 혹시라도 기존의 편향된 시각에 근거해 대립각을 세운다면 모두가 불행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