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무더위가 길고 길다. 이런 여름이 계속 되풀이 된다면 참으로 힘겨울 것이다. 기상이야 하늘이 주는 것이지만 그 시련을 이기는 때에는 원망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원망이 원망에 머물 때 우리는 어리석다고 한다. 이 시련의 의미를 새기고 옛 성인의 지혜처럼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더위가 ‘나’에게만 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아픔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 사람에게는 더욱 힘 있는 미래의 자양이 된다. 새삼 요즘은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때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국민적 감정이 뜨겁고 지난 광복절 행사에서 노 대통령이 과거사에 대해 정면에서 바라보자는 취지의 경축사에 대한 견해 또한 각 정파마다 뜨겁다. 혹자는 경제의 어려움을 들어 지금 그러한 것에 관심을 둘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맞는 말 같지만 코 앞만 바라보는 견해라 코웃음을 웃게 만든다.
공교롭게도 얼마전 밝혀진 바로는 여당 대표의 아버지가 일본 헌병을 지낸 것으로 나타났다. 야당 대표의 아버지가 친일 일본군 장교였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들의 자식이야 무슨 죄가 있느냐, 연좌제 아닌가 라고 역설할 수 있다. 그렇기도 하다. 한데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들추어 고백하고 부끄러움이 있었으며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에게 깊이 사과하지 않은 데 있다.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닐 줄 안다. 그러나 ‘아버지’를 딛고 넘어가는 것이 역사의 발전이라고 믿는다면 그러한 아픔은 필연적이며 또 견뎌내야 한다. 그게 역사의 준엄함이며 정직한 미래를 가르는 지팡이가 되는 것이다.
과거사의 어두운 면은 이미 오래 전에 들추어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하고, 갚을 것은 갚고 보상할 것은 보상하고 출발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때도 지금 어느 당파의 주장처럼 그것이 급한 게 아니라 나라의 꼴을 만드는 것이 급하다는 논리였을 것이고 민중들의 고픈 배를 달래는 것이 급하다는 논리였을 것이다. 그 또한 일리가 없지 않은 논리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고름이 살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지금 새삼 알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잊혀질 줄 알았을지 모르지만 역사는 흐르는 물과 같아서 시간이 오래면 오랠수록 더 공평해지고 생생해지는 생리를 가지고 있다. 더 빨리 어두운 상처를 치유했어야 했지만 우리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살다보면 잘못한 점이 있어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어도 그 기회를 주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또한 인간사의 한 측면이 아니던가. 마침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일본의 오랜 역사왜곡의 예를 우리는 눈앞에 가까이 펼쳐놓고 고민하고 심판하고 시정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그러나 내부에 의한 우리의 역사가 심히 왜곡되어 있다면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할텐가?
이른바 차기의 유력한 지도자라 할 만한 ‘대표급’ 정치인들의 ‘출신’이 어두웠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 크다. 독립 투사들의 자손이 그들 중에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 씁쓸함이 시사하는 바는 더더욱 그렇다. 그들을 경계하는 세력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인가? 과장하면 악은 선을 끝내 막으려 하는 것이 생리요, 거기에서 역사의 아픔이 나오는 것이다. 역사의 물길은 자꾸 맑고 크게 흘러가려고 하는데 과거 물길의 근원은 복개해 놓자고 하니 자꾸 흐린 물이, 썩은 물이 뭉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안타깝고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우스개처럼 덧보태자면 유신시절의 복개된 청개천을 지금 다시 뜯어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뜯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결론이 아닌가? 무더위가 이제 꺾인 듯싶다. 역사의 무더위가 걷힐 때가 올 것이다. 반드시 올텐데 그 대의마저도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은 기가 찰 일이다. /장석남(한양여대 교수·문예창작과)
어두운 과거사 이젠 씻자
입력 2004-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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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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