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행정기관과 자치단체들이 해당년도 각종 사업예산을 한꺼번에 집행하느라 법석을 떠는 일이 연례행사가 되었다.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되풀이 되고 있지만 여전히 구태가 재연되곤 한다. 상황에 따라 정당한 집행도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은 엉뚱한 사업에 남는 예산을 소모시켜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국회가 올해만은 이런 잘못된 관행을 고쳐보자고 나섰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정부부처가 집행하는 불용성 예산중 연말을 기해 무분별하게 집중소모하는 실태를 파악해 낭비성이 짙은 집행에 대해서는 감사원 감사를 청구한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 대대적 행정개혁을 요란하게 떠들어왔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개혁정도는 여전히 미미한 형편이다. 연말 예산낭비도 그 가운데 하나다. 예결위가 이미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부부처의 비효율적 사례가 6건이나 드러났다. 특히 대통령 비서실은 작년 12월 중순부터 31일까지 총 50건의 사무기기 및 사무용품을 사들여 다급성에 의문을 만들었고 재정경제부 또한 연말 121건의 사무용품 구입과 기타 경비로 예산을 털어냈다가 여론의 질타를 자초했다. 세수부진을 걱정해 내년부터 주세를 인상하고 봉급생활자의 소득공제율을 낮추겠다는 정부에서 이런 고질적인 관행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은 큰 문제다.

 광역이든 기초든 지방자치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연말만 되면 각 시·군이 경쟁이라도 벌이듯 멀쩡한 보도블럭을 걷어내고 새로 깔고, 차선정비 명목으로 경계석을 뜯어내는가 하면 조경수 교체작업을 하고 있다. 심지어 한겨울에 가로수를 심는 경우까지 있다. 복지예산 증액에는 지방세수가 부진하다느니, 재정자립도가 낮다느니 온갖 핑계를 대면서, 다음해 예산 삭감을 우려해 이같이 불필요한 사업을 마구잡이로 벌이는 것이다.

 이는 정부와 지자체들이 무계획적인 예산편성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여러가지 사정 때문에 예정했던 사업이 지연돼 불용예산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예산은 국회와 지방의회에서 따져 판단하고 이월하면 된다. 그러나 일단 세워진 예산이라고 앞뒤없이 무조건 쓰고 보자는 식은 안된다. 선계획 후예산편성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진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회와 지방의회는 지금부터 철저한 감시체제를 갖춰 혈세가 낭비되는 못된 관행을 고쳐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