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철(제2사회부장)

서해안 바닷가,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하는 아름다운 모습의 농·어촌 마을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에 지금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려있다.

농·어촌지역 대부분이 그렇듯 앞 바다와 뒷 농지에 의지하며 살아온 매향리 주민들은 6·25전란 이후 미군이 인근에 주둔하고 폭격기가 사격훈련을 해도 묵묵히 참고 견뎌왔다.

`어려운때 우리를 도와준 고마운 나라'라는 생각에 불편과 피해를 감수해온 주민들은 그래도 언젠가는 서로가 이해하는 가운데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믿었다.

마을입구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 포구는 이렇게 수십년을 이어왔다.

가끔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사격장 이전을 요구하기는 했지만 보잘것 없는 어촌마을의 애환정도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최근 사격장 오폭 사고가 발생하면서 불거진 주민들의 불만과 분노가 극에 달한 모습으로 심상치 않은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 8일 오전 8시30분께 훈련중이던 미 공군소속 전폭기 1대가 이마을 앞바다에 위치한 농섬(쿠니)사격장에 500파운드짜리 포탄 6발을 투하했다. 이 폭격으로 인한 연쇄적 폭발음과 진동으로 놀란 주민들이 대피하다 7명이 넘어져 부상했다. 또 매향1리와 5리 등 인근 5개마을 농가주택 170여채의 유리창이 개지고 벽에 균열이 가는 피해가 발생했다.

주한미군은 이후에도 사격을 계속하다 최근 주민들의 보상요구가 거세지고 국내 여론까지 악화되자 뒤늦게 훈련을 중단하고 정부와 합동으로 진상조사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같은 피해가 처음이 아니라며 사격장 이전을 요구하는 등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55년 매향리앞 육상과 해상에 조성된 농섬(쿠니)사격장에서는 미 공군 전투기들이 매주 60시간씩 기동사격 및 폭탄투하 훈련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훈련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고,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88년 `매향리 미공군 폭음피해 대책추진 위원회'를 결성했다.

대책위는 주민들의 폭음피해와 생활환경 저해요인 등을 조사, 국방부 국회 청와대 등에 수차례 진정하고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농섬(쿠니)사격장 이전 또는 주민완전 이주 보장 등의 근본대책을 요구해 왔다.

최근 국내 127개 시민단체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행정협정)이 불평등하다며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또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보상을 놓고 한미 양국이 묘한 갈등을 빚고 있다.

이같은 미묘한 시점에서 다시 불거진 매향리 사고는 국내외의 관심을 모으면서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매향리 사격장에서 우라늄탄을 사용했을것이라고 밝힌 미국 반전평화운동가의 말은 엄청난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그동안 피해 주민들은 아픈 상처를 보듬으며 보상을 요구하는 외로운 투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정부는 물론 주한미군 당국도 이를 외면한 채 소극적으로 대처해온 느낌이다.

만약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가려는 태도로는 사태해결에 아무 도움이 안될뿐더러 오히려 반발과 저항이 거세지는 등 사태가 확산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이제라도 정부와 미군측이 사태해결을 위해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