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테 콜비츠의 판화 `어머니들'을 다시 들여다 본다. 잔뜩 겁에 질린 한무리의 아주머니들이 꽉 부둥켜 안고 있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았을 듯 싶은 억센 손을 그러쥐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이도 보인다. 코 앞에 다가온 몰살(沒殺)의 공포. 화면에는 없지만 그들을 빙 둘러 포위한 총구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맹수의 습격을 맞아 새끼들만이라도 구하려고 마지막 대형을 이룬 초식동물떼 같다. 어머니들의 치마 자락을 헤치고 아이 둘이 두려움 가득한 눈망울로 빼꼼히 밖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짙은 음영 효과를 더해 전쟁의 공포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목판화는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1차대전에 출전했던 아들을 잃은 뒤 반전(反戰) 미술의 선봉에 섰던 독일 여성판화가 콜비츠(1867~1945)가 1922년 새긴 작품이다. 콜비츠는 손자마저 2차대전으로 잃은 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어깨 위에 붙어있는 머리는 이제 내 것도 아니다. 내가 죽는다는 것, 오! 차라리 그것이 나쁘지 않겠구나.”

콜비츠의 `어머니들'이 불쑥 떠오른 것은 요즘 전해지는 남·북 어머니들의 갖가지 사연을 되작이던 뒤끝이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둘째 아들이 살아돌아온대도 이젠 치매에 걸려 알아볼 수도 없게 된 100세 어머니, 자식이 북에 살아 있는 줄은 알았지만 내색도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다가 끝내 숨을 거둔 어머니, 수십년을 하루도 빼지 않고 자녀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해온 어머니, 칠순 아들이 찾아가기 직전에 돌연 타계소식이 전해진 북의 109세 어머니···.

이들이 지난 세월 겪었을 신산고초가 판화 속 `어머니들'의 겁에 질린 표정처럼 묵지근하게 가슴을 짓눌러 온다. 징병·징용·정신대에 남편·자녀 끌려가지 않을까 혼비백산하고, 빨치산에 국군에 의용군에 나간 자식생사를 몰라 밤잠 못이루며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지' 가슴 치며 피눈물을 쏟았을 어머니들이다. 시공(時空)이 엄연히 다르지만 판화의 촌부(村婦)들은 이 땅의 어머니들 이미지와 오차없이 포개진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들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천근만근 역사의 무게에 짓이겨진 삶을 살아야 했다는 것이다.

오는 광복절 일부 가족이 상처투성이 세월을 약간 보상 받는다. 3박4일 꿈결같은 일정이지만 살아 생전에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부모형제를 부둥켜 안아 볼 수 있다. 말보다는 눈물이 훌쩍 앞설 것이다. 내내 울기만 하다가 헤어지는 어머니도 있을 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아픔과 슬픔이 켜켜로 가슴에 쌓였을 것인가.

그러나 이들은 그래도 복받은 사람들이다. 죽기 전에 상봉차례가 올까 가슴 졸이는 어머니들은 이번에도 혹시 85년도 처럼 단발로 끝나는 건 아닌지 마음을 놓지 못한다. 아직 생사확인조차 못해 애를 태우는 가족은 더 많다. 남북은 오고 가건만, 사상의 장벽, 법의 철조망에 막혀 고향 땅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고, 90세 노모를 두고 북송을 택한 70세 장기수의 새로운 이산도 있다. 불행의 역사는 아직도 이 땅의 많은 가족을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내리누르고 있다.

다음 주 상봉소식을 전하는 남북의 TV 앞에는 많은 눈물이 함께 흐를 것이다. 그 눈물방울이 모여 진정한 화해와 평화의 강으로 흘러내리기를, 콜비츠의 판화 속 어머니들에게도 안도와 기쁨의 표정을 되찾아 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양훈도(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