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불꺼진 가을밤 풍경은 을스년스럽기까지 하다. 민의과 민복를 위한 토의와 열기는온데간데 없고 대결과 파행만이 남아 있다. 여기저기서 경제위기의 재연를 염려하고 있지만 이를 타개하기위해 연구하고 질의하는 의원들의 `만남의 장'은 없다. 이런 모습들이 10월에 접어든 국회의 실상이며 현재 우리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대변해 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들게한다.
여야간의 극한 대치로 인한 경색정국으로 16대 정기국회는 회기(1백일)의 3분의1이 넘는 세월을 훌쩍 넘겼다. 의원들은 예년같으면 이미 국정감사를 마친뒤 각 상임위별로 한창 국정현안과 예산 심의에 몰두할 때이나 국회의 본래 기능은 궤도를 이탈한채 공전에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이유 탓인지 요즘 부쩍 국회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하거나 심지어 부담스러운 걸림돌로까지 매도하는 이들이 있다. 당리당략에 급급한 정치권에 대한 염증과 더불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분석된다.
와중에 우리 실상이 경제위기 이전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으며 이에따른 논란이 많다. 일부는 개혁에 대한 피로감, 노사간의 제몫 챙기기와 구조조정속에서의 도덕적 해이, 날로 폭이 넓어지는 빈부 격차등으로 사회 균형이 급속히 깨지면서 수습할 수없는 단계로 까지 이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주가폭락과 유가급등에 따른 물가인상, 의료계 파업으로 인한 국민적 고통등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해결 방안 없이 표류하고 있는데 대해 우려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한 택시운전기사의 넉두리 한마디가 못내 가슴을 저민다. 경제위기가 온 97년 말보다 더 많은 승객들이 1만원권 화폐로 요금을 낸다는 뭐 그리 대스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이 운전기사의 해석은 어떤 경제전문가의 분석보다도 더 공감을 느끼게 했다. 즉 서민들이 돈이 많아 고액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흥청망청 쓸때와는 달리 지출을 줄인 탓으로 잔돈이 줄어 1만원권화폐를 많이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역설적인 분석을 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위기설이 부각됐던 지난달 내국인들의 해외여행객 수가 예년에 비해 5만2천여명이 늘어나는등 큰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위에서 제시된 두가지 예는 여야의 상반된 입장으로 빚어진 국회 공전과 함께 작금의 우리 사회에 내재하고 있는 양면성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즉 불균형이 아주 심해진 현실을 드러내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이를 해소할 정책 대안 마련이 없는 실종된 국회의 역할을 부각시켰다고 볼 수있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최근 정치권은 국민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또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해답을 찾아내고 정책적인 대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라도 국회를 열어야 한다.
국회가 더이상 표류하면 국정의 손실은 불 보듯 뻔하다. 국회가 정상화되어야 공적자금 40조원추가 조성문제, 대북 식량지원 문제, 새해예산 편성문제등 산적한 현안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 위기적 상황 속에서 법률을 수반하는 예산과 예산에 기초한 법률은 국민의 이익을 지키는 최후의 보류이며 국회의 심의가 부실해지면 국민의 짐으로 직결될 수있다는 점을 정치권은 직시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정치가 무엇인가.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협상할 것은 협상하면서 문제를 풀면된다. 여야는 대화와 타협을 이루는 상생의 정치를 회복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국회에서 모든 현안들에 대한 대안들이 빨리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宋潾鎬정치3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