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 겨울 가고 봄 오니 해 바뀐 듯 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사람들이 어리석어 꿈 속에 살지.”
 세밑 이맘 때면 떠오르는 시(詩·작가미상)다. 내면을 들여다 보면 인간세상이야 늘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을 텐데, 무얼 그리 아웅다웅하며 사냐는 풍자일 터이다. 그렇긴 해도, 풍진(風塵)에 묻혀 사는 중인(衆人)으로서야 한 해를 보내며 어찌 감회가 없을손가.
 희망으로 맞았던 새천년 첫 해도 저물고 다시 새해가 돋는다. 세기 말의 해가 지고 이제 비로소 새로운 세기의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온갖 희망적인 수사(修辭)로 들떴던 밀레니엄, IMF 조기졸업에 대한 기대, 그래서 뭔가 좋은 일들이 있을 것 같았던 `즈믄 해 맞이'였다. 하지만 부푼 희망도 잠시, 지금 대다수 국민들은 또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 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 채 묵은 해를 보내고 있다. 겨울나기에 노심초사하는 서민들, 늘어나는 실직자와 노숙자, 그리고 무료급식소에 늘어선 행렬 등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경제위기'를 실감한다. 너무나 빠르게 교차하는 희비와 명암 앞에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요즘은 만나는 이들마다 내일을 걱정하며 불안해 한다. 영세민들은 물론 IMF로 졸지에 중산층에서 서민으로 전락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최근 불어닥치는 경기한파는 그야말로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일 터이다. 인간에게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할진대, 궁핍이야말로 어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겠는가. 아울러 원인과 책임에 대한 온갖 비난도 쏟아진다.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정부와 정치권을 원망하는 소리들이다. 아주 노골적으로 욕을 하며 흥분하는 이들도 많다. 그만큼 민심이반 현상이 깊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불만과 불안심리엔 피해의식도 크게 자리잡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빈부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가 불평등함을 보여주는 지니계수가 올 3/4분기에 0.310으로 IMF체제 이전보다 높아졌다고 한다. 여기에 `빈익빈 부익부'라는 진부한 말은 차치하고라도, 비리를 통한 일부 벤처업자들의 부(富)축적 과정 등을 보며 허탈감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빈부격차는 `크냐 작으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커지느냐 작아지느냐'의 문제란 점에서, 조세자료정비 등을 통한 소득의 균등배분 정책이 아쉽기만 하다.
 이처럼 새천년 첫 해의 희망이 실망으로, 기대가 불안으로 급전직하한 것은 결국 개혁의 고삐를 바싹 죄지 않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경제지표가 좀 나아지는 듯 싶으니까 총선 등을 앞두고 대중에 영합해 정책을 느슨하게 편데다, `고비용 저효율'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조정에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오늘과 같은 사태를 초래했다. 이러다 보니 국민들의 불신은 깊어지고, 각 부문의 구조조정이 삐걱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대를 위해 소가 희생당하는 게 아니라 소를 위해 대가 희생한다”는 말도 섣부른 개혁이 되레 빈부격차를 더 벌려놓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 와서 지나간 일들을 자꾸 뒤집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뒤늦긴 했으되, 지금부터라도 대다수 국민들이 수용할 만한 개혁 프로그램들을 내놓고 투명하게 펼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잘못된 정책으로 상처받고 고통겪는 이들을 감싸안으면서 신뢰를 쌓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믿음은 산도 움직일 수 있지만, 믿음을 잃으면 모든 게 `바벨탑 쌓기'일 뿐이다. 뿌린대로 거둔다고 했으니, 새해에는 다시 희망의 싹을 잘 키워 알찬 수확을 거둘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문일(사회 2부장) ymo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