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은 월드컵이 열린다. 그래서 나라 구석구석 월드컵 찬가가 넘쳐 흐른다. 김대중 대통령은 14일 연두기자회견 연설에서 월드컵 성공개최를 경제의 경쟁력 제고, 남북관계 개선과 함께 국정운영의 3대과제로 제시했을 정도다. 또 임창열 경기도지사와 심재덕 수원시장은 16일 성공월드컵을 위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수원 월드컵 성공을 도정, 시정의 최고 목표로 제시한뒤 협력을 다짐했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모두 월드컵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를 수치로 강조하면서 국운 융성과 지역 발전의 결정적 전환을 가져올 것으로 홍보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11조6천억원의 생산유발효과와 5조4천억원 상당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35만명의 고용창출과 함께 '코리아'와 '수원' '인천'을 비롯한 국내 10개 개최도시를 국제적 브랜드로 만들어 얻을 수 있는 무형적 가치는 상상을 불허한다고 한다. 이 정도면 월드컵은 분명 '2002년 한국의 복음(福音)'이라 하겠다.
그런데 우리는 올림픽을 능가하는 지구촌 축제, 월드컵을 통해 세계인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결론은 문화다. 지구촌의 월드컵 방문객들이 한국에서 원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월드컵 경기를 즐기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국의 문화체험이다. 그들에겐 국제축구연맹(FIFA) 주최의 월드컵이 소비의 대상이라면 개최국인 한국의 문화는 체험의 대상이다. 그래서 개최국의 문화가 빠지면 월드컵은 FIFA가 세계인을 상대로 벌이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의 월드컵 관광객들은 한국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 입국심사대에서부터 한국을 호흡할 것이다. 그리고 도로위에서, 숙박업소에서, 밤거리의 번화가나 뒷골목에서, 화장실에서, 유명관광지에서, 선술집이나 환락가에서, 각종 축제 행사장에서 그리고 시장과 백화점에서 한국을 체험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저런 공간속에서 만나고 부딪히는 우리를 통해 우리를 느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체험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외국을 방문했을 때 밟는 문화체험 과정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문화월드컵의 현실은 어떤가. 서울을 비롯한 전국 10개 월드컵 개최도시는 요즘 비상이 걸려있다. 월드컵 붐 조성을 위한 문화행사를 기획하느라 그렇다. 수원만 하더라도 대형 국제음악제와 세계적인 성악가들의 초청공연이 성사단계에 있거나 추진중이다. 월드컵이라는 글로벌 행사를 처음 준비하는 개최도시들은 월드컵 문화행사도 '글로벌'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초대형 공연 유치 경쟁에 발벗고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인지 3~4개 도시가 서울의 대형기획사에 문화행사 기획을 턴키방식으로 발주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러다가는 월드컵 문화행사가 대형기획사나 특정 해외 문화권력자들의 특수로 전락하지 않겠나 하는 염려가 절로 든다. 또 규모 위주의 획일적 이벤트가 한국을 찾은 관광객들이나 국민들에게 무슨 감흥을 줄 수 있겠나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외화(外華)에 치우쳐 내빈(內貧)을 부를까 하는 걱정인 셈이다.
그래서 하는 소리지만, 이제라도 우리를 앞세우는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하지 않나 싶다. 지역별 문화행사나 축제를 전면에 내세워야한다. 수원화성문화제, 화성국제연극제를 비롯해 도자기축제, 도립·시립예술단의 공연을 산개하기 보다는 수원에 집중하는 방안도 모색하면 좋겠다. 또 경기, 인천의 민속·전통놀이 경연대회를 월드컵 기간에 경기장 주변에서 열어봄직하다. 그리고 시민은 골목을 깨끗이 쓸고, 그냥 평소처럼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뭔가 보여줘야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우리가 살던대로 살아가면서 조금 더 준비하는 것, 그것이 외국인에 대한 우리의 준비가 아닐까 싶다. 그들을 우리 뒷골목에 끌어들여 우리식대로 체험케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준비하자는 얘기다. 지나친 외화(外華)는 내빈(內貧)의 증거일 뿐이다. <윤인수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