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보름간 휘몰아쳤던 지방선거의 광풍이 지나갔다. 인신공격과 지역감정 등 네거티브 전략이 난무했던 6·13 지방선거가 일단 막을 내렸다. 후보자들은 유세하랴, 텔레비전 토론하랴 홍역을 치렀다. 특히 월드컵 기간에 치러진 선거여서 후보들 각자가 자신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 했지만 4천만이 붉은 악마가 된 상황에서 국민의 관심을 끌어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쨌거나 당선자는 가려졌다. 악전고투 끝에 당선의 영광을 안은 당선자들에게 우선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아울러 아쉽게도 분루를 삼켜야 했던 낙선자들에게도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자, 이제는 선거전 기간에 있었던 앙금을 말끔히 씻어내고 당선자나 낙선자나 모두 민선 3기 지방시대를 제대로 열기 위해 몸을 던져야 할 시간이다. 국가도, 자치단체도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 혼미한 상황을 헤쳐나가야 할 지혜와 용기와 단합이 절실한 시점이다.

◆ 초심 끝까지 유지하길

민선 2기까지가 지방자치의 시험단계였다면, 민선3기는 민선체제의 기틀을 확고히 하고 지방자치를 성숙시키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비록 투표율은 낮았지만, 주민들은 민선 3기가 반드시 그래주기를 열망하고 있다. 어쩌면 낮은 투표율은 그러한 기대의 반대적 표현인지도 모른다. 이 기대에 부응하려면 지방행정에 기업경영 기법을 도입하고 행정봉사의 질을 높이는 등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낮은 투표율을 월드컵의 탓만으로 돌리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지역 최고의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할 지방선거가 그 지역주민들로부터 외면 당했다는 사실은 당선자들이 심각히 반성해 봐야 할 대목이다. 4년 살림을 책임질 지역일꾼을 선출하는 선거에 주민의 관심도가 낮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주민들이 모든 후보를 일단 거부한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이 냉담한 시선을 극복하는 일은 민선3기의 첫과제일 것이다.

단체장들은 앞으로 행정수행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더 많은 주민이 등을 돌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민선3기 단체장들은 '지역주민과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던 출마당시의 초심을 재임기간 내내 되새기며 지방행정을 펼쳐야 할 것이다. 4년 후 더 냉혹한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말이다.

◆ 논공행상은 안된다

민선 3기의 취임과 동시에 불거질 문제가 조직내 인사다. 벌써부터 공직내부는 뒤숭숭하다. 선거전이 시작되면서 공직내부의 줄서기는 극에 달해 있었다. 줄을 잘 섰던 측은 기대가 크고, 잘못선 줄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모든 공직자가 새 단체장이 어떻게 인사를 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새 단체장이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조직원들에게 일자리를 주어 승리의 기쁨을 나눌 수는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한명에게 일자리를 주면, 다른 한명이 희생되어야 한다. 민선3기까지 오면서 단체장이 새롭게 취임하면 당연히 인사가 이뤄졌으며, 논공행상 차원에서 이른바 '요직'에 외부인사를 기용한 사례가 잦았다. 줄을 잘 서면 한자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행정조직은 단체장의 사조직이 아니다. 더이상 자리 나눠갖기식 인사로는 주민들이 원하는 행정서비스를 공급할 수 없다. 당선자들은 선거전에 나서면서 한결같이 능력에 맞는 인사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민선3기에서는 이 약속이 반드시 이뤄지는 걸 보고 싶다. '내사람' '전 단체장의 측근' '상대후보를 응원한 인물' 따위의 리스트가 나돌고, 이른바 '살생부'가 만들어져 제거작업에 들어가는 일을 제발 다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인사에서부터 새 단체장들은 '초심'을 되새겨야 한다. 인사운용이 이뤄질 때 지방자치는 한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유권자들이 무관심한 듯 하지만 매섭게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민선3기 단체장들은 정말 명심해야 한다. <윤재준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