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이 흔들리고 있다. 한때 수렁에 빠진 한국경제를 구원해줄 유일한 희망으로 떠올랐던 벤처기업이 이제는 각종 게이트를 잉태한 비리의 온상으로, 수익성없는 부실경영의 대명사로 폄훼되면서 상당수가 도산위기를 맞고 있다. 자연히 벤처기업인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도 예전처럼 곱지가 않다. 이렇듯 벤처기업이 나락으로 떨어짐에 따라 한국경제도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우리는 지난 97년 말 외환위기를 계기로 30여년동안 구축해온 중후장대형 산업중심의 경제체제가 안고있는 한계를 경험한 바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한국경제는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케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벤처기업은 전환을 주도하는 리더로서 종전의 성숙산업 중심구조에서 지식산업 중심구조로 이행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국민적 기대를 한몸에 받아왔다.
물론 벤처기업은 한국경제가 외환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활기를 찾는 데 한몫을 단단히 했다. 특유의 기업가정신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침체된 경제에 역동성을 불어 넣어 수출증대와 고용창출에 절대적으로 기여 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따라서 알토란 같은 벤처기업이 미처 활착되기도 전에 하나, 둘 잇따라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다.
최근 세계경제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산업경제에서 지식기반경제로 발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지식기반경제는 지식과 정보의 창출, 확산, 활용이 모든 경제활동의 핵심이 되는 경제를 의미한다. 이는 노동, 자본과 같은 전통적인 생산요소 대신 지식과 기술이 부가가치 창출에 크게 기여하는 시스템으로 한국경제 역시 살아남으려면 벤처기업의 활성화를 통해 지식기반경제로의 골격을 갖춰나가야 한다.
문제는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는 지식기반경제의 주축인 벤처기업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벤처기업이 시들해진 원인을 한마디로 집어내는 것은 무리지만 무엇보다 한국경제의 역동성으로 상징되던 왕성한 기업가정신이 사라진 것을 배제하고는 달리 해법을 찾을 길이 없다.
경제개발 초 발현되었던 활발한 기업가, 창업정신이 경제적 성숙단계에 접어들면 고용안정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바뀜에 따라 퇴색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우리의 경우 중소기업보다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전략을 추구해왔기에 중소기업의 모태인 창업정신이 싹을 틔울 만한 토양이 절대적으로 빈약했다는 취약점을 원죄처럼 안고 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경제의 골격이 개편되는 과정에서 벤처기업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진 것은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다. 그러나 벤처기업이 제대로 육성되기 위한 토대가 마련되기도 전에 일부가 벤처기업은 황금알을 낳는다는 환상을 통해 거금을 잡고 흔드는 바람에 진정한 벤처정신을 오염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래도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아무나 참된 벤처기업인이 될 수 없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는 점이다.
근세기 들어 토착 민족자본을 형성해 외국자본에 대항했던 개성상인을 우리는 깊이 벤치마킹 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타고난 근면과 투철한 상혼 그리고 지식에 대한 남다른 욕구는 바로 우리가 필요로하는 벤처기업가정신과 맥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5계명이 있었다. 남의 돈을 가지고 장사하지 말고, 업종을 정했으면 한눈을 팔지 말고, 목숨을 잃더라도 신용만은 잃지 말고, 능력없는 자식에게 대를 물리지 말고, 잘사는 나라 만들기를 돕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덕목이었다.
진정 벤처기업으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이루고자 한다면 이러한 개성상인의 기업가정신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개성상인의 후예들이 일군 기업 가운데 시대적인 상황이 어려워 무너졌다는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은 기업가정신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은 시대가 변해도 변치않는 법이다. <이용식 (경제담당부국장)>이용식>
'벤처기업인과 개성상인'
입력 2002-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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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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