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LPP) 협정이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비준 동의됐다. 지난 3월말 한미 양국이 합의 서명한지 6개월 만이다. 그동안 해당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재협상요구가 빗발쳤지만, 예상했듯이 협정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자치단체와 협의하고, 민원을 먼저 해결하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으나, 이는 마지못해 한마디 덧붙인 '사족'처럼 보인다. '미국 뜻대로 해라, 말썽은 피우지 말고…'라는 말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익히 알려진 내용이지만 LPP를 다시 들여다 보자. 일단 미군들이 사용해온 땅 4천100만평가량을 돌려주는 대신, 오는 2011년까지 154만평을 새로 공여해야 한다. 경기도에서만 해도 춘천 캠프 페이지가 이전해올 이천 대월면에 20만평, 평택 험프리 24만평, 오산 공군기지 주변 50만평, 의정부 캠프 스탠리 2만평 등 모두 96만평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드는 비용 3조3천300억원 가운데 1조4천900억원을 우리 나라가 부담해야 한다. 어린 시절 '헌 집 줄게 새 집 달라'고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렸어도 순순히 모래집을 짓도록 허락해 주었던 순진한 두꺼비처럼 '헌 땅' 받고 '새 땅'을 내달라는 얘기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4천100만평을 돌려받는데 154만평쯤이야 내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실제로 그런 의미에서 LPP를 환영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런 셈법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산수'다. '내 땅' 내주고 가슴앓이 하며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많이 돌려받으니까 대신 조금은 줘야 한다? 4천만원 빌려갔던 빚쟁이가 차일피일 갚지않고 딴전을 피우다가 한 50년만에 돈을 갚으면서, 그 대가로 150만원을 내놓으란다면 그래도 기뻐해야 할까, 억울해 해야 할까? 게다가 주민들이 그토록 원했던 매향리 사격장이나 파주 다그마노스 훈련장은 아예 반환대상에서도 빠져있다.

더구나 현재의 기지를 통폐합, 이전하는데 드는 비용은 방금 든 '빚쟁이 비유'의 금액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거금이다. 그 이전비용 가운데 우리측이 부담해야 할 비율만 45%, 1조5천억원 가까이 된다. 그걸 우리가 왜 물어야 할까. 백 번 양보해서 세계의 경찰이 '분단조국'을 지켜주는 대가라고 치자. 그래도 천문학적 비용을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국방부는 돌려받는 땅의 매각대금으로 충당하면 어렵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매각이 그렇게 의도대로 이뤄지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비관적 전망을 하는 이유는, LPP협정의 중요한 문제점 가운데 하나인 '미군기지의 환경오염'과 관련이 있다.

녹색연합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90년 이래 기름유출 등 환경사고를 일으킨 미군기지가 전체의 40%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도, LPP엔 오염기지에 대한 환경부담을 우리가 떠안는 것으로 돼 있다. 만약, 돌려받은 기지를 매각하려고 보니, 땅은 기름투성이고, 곳곳에 화학탄 불발탄이 묻혀 있다면 어쩔건가. 매각은 관두고, 필리핀 수빅만 기지처럼 미군이 남긴 환경오염 후유증으로 죽어가는 주민이 발생하지 말라는 보장이 있을까. 지난 98년 3월 의왕 메디슨 기지의 기름유출 사고로 백운산 계곡은 죽어 버렸고, 회복되기까지 앞으로 100년은 걸릴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좋다. '반미'를 선동하는 게 이 글의 목적은 아니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단 믿어 보자. 그래도, 신규 공여지를 마련하는 일은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이천시민들은 벌써 8개월째 맹렬한 기지이전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춘천 캠프 페이지가 도심에 자리잡고 있어 심각한 민원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옮겨야 한다면, 이천시민들은 만만한 '두꺼비'인가? 이 헬기 부대 이전은 국방부가 이천시와 사전에 상의 한번 하지 않았다. 교통 요충인 의정부시 용현동이나, 평택 도심에서도 추가 공여지를 도대체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 지 궁금하다.

주한미군의 존재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들을 위한 기지도 필요하고, 훈련장도 있어야 한다. 아무리 그렇지만, 미군이 '찍은 대로' 헌 땅 받고 새 땅을 내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해당 지역주민들은 앞으로 정부와 국회를 원망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일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는 점잖게, '말썽' 없이 일을 처리하라고 했지만, 그 방도가 막막하니 걱정이다. <양훈도 (지역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