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대선잔치가 끝났다. 승자와 패자의 운명이 엇갈리고 그들을 지지했던 유권자들 사이에 희비가 교차한다. 늘 그렇지만 막이 내린 잔치의 뒤끝은 공허하다. 슬픔과 기쁨, 탄식과 좌절. 승자는 웃음을 터뜨리고 패자는 분루를 삼킨다.
이회창 후보는 지고 노무현 후보는 21세기 첫 대통령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그 어느 때보다 유난히 우여곡절이 많은 끝에 획득한 승리라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국민경선에서 승리한 후 내내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에 열세를 보인 후 극적으로 정몽준과의 후보단일화 성공. 선거 전날 극적으로 터진 정몽준의 노무현지지 철회 등 마치 드라마같은 선거였기 때문에 승리의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자리라는 것은 생각보다 행복한 것이 아니라고 역대대통령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한 나라를 이끌고 가야하는 최고지도자의 고뇌 역시 일반 국민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하고 처절하다고 술회하고 있다.
노 당선자는 이번 선거기간동안 많은 공약을 내걸었다. 그 공약들이 모두 지켜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단 한 명도 없겠지만 작금의 우리 나라 현실은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선거이슈로 떠올랐던 남북관계에 대한 위상정립도 시급하겠지만 무엇보다 경제문제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노 당선자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이 보는 내년 우리 나라 경제전망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미국경제의 회복세 부진. 국내소비심리의 급격한 둔화. 가계부실의 급증. 불투명한 국제유가 등 산넘어 산이다. 지난 주말 한국경영자총회가 국내 100대 기업경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내년도 경제전망' 조사결과 6%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대답한 응답자는 고작 3%에 불과했고 응답자의 49%가 경제침체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으며 8%는 이미 침체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대답한 것은 우리경제가 절대절명의 위기에 놓여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 당선자는 권위적이고 제왕적인 대통령으로서의 면모보다 경영마인드로 철저히 무장된 대한민국 CEO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훌륭한 CEO가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은 두말 할 것 없이 신뢰성이다. 100대 기업경영자들이 '차기정부가 우선적으로 추진해야할 경제정책'으로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정부정책의 신뢰성 회복과 시장기능 중심의 경제정책확립을 꼽은 것을 노 당선자는 각별히 명심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제왕적 대통령은 수없이 경험했지만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노 당선자가 진정으로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머리는 차갑되 가슴은 따듯하고 무엇보다 여론을 수렴하는 귀가 큰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존경받는 CEO들은 화려하게 치장된 집무실에 앉아 있기보다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의견들을 귀담아 듣는다. 이는 두겹 세겹으로 둘러싸여 감언이설로 무장된 인의 장막을 걷어내야 한다는 의미다. 노 당선자는 대한민국호를 직접 끌고가는 최고경영자라는 비장한 마음가짐을 가져야만 난파위기에 놓여있는 한국경제를 재건할 수 있다. 민주당은 5년동안 온갖 비리의 중심에 있었던 집권당이었다. 노 당선자는 이런 구태를 모두 털어버려야 한다. 존경받는 CEO는 지연, 혈연, 학연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지역간의 갈등을 푸는 것도 노 당선자가 풀어야 할 과제다. 노 당선자는 대통령 당선에 들떠있기보다 어려움이 산적해 있는 한국호의 미래에 대해 스스로 CEO라는 자세를 갖고 슬기롭게 극복하길 간곡히 부탁한다. <이영재 (경제부장)>이영재>
대통령보다 CEO라는 생각으로
입력 2002-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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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1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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