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매달아 가죽을 벗겨 먼지나 티끌이 앉지 않도록 하십시오. 창자와 밥통만 씻고 그 나머지는 절대로 씻지 말고 곧장 가마솥에 넣으시고 바로 맑은 물로 삶으십시오. 꺼낸 다음에는 식초와 간장, 기름과 파로 양념을 합니다. 혹은 다시 볶거나 삶기도 하는데 이러면 아주 훌륭한 맛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초정 박제가(朴齊家)의 개고기 요리법입니다.”

유배령으로 강진 땅에 매인 다산은 같은 처지인 중형 약전에게 서신을 보내 '기력회복을 위해서는 적어도 닷새에 한마리는 (개를) 삶아 먹어야 한다'고 권한다.

조선후기의 큰 어른인 다산이 집에서 기르는 개도 아닌 야생들개를 잡아 먹는 방법을 자세하게 기술(記述)한 점도 무척 흥미롭다.
보신탕은 우리 민족이 즐기는 여름철 보양 음식이다.

무더위가 기승인 삼복(三伏)에 조상들은 개를 삶아 먹으며 허한 기를 달랬다고 한다. '살아서는 주인을 따르고 죽어서는 기꺼이 제 몸을 내놓는' 게 누렁이다.

조선후기 천주교도들이 모진 박해를 견뎌낸 데는 보신탕이 한 몫 거들었다는 설도 전한다.
2003년, 말복(末伏)이 코앞인 한여름의 절정에 대한민국 견공들은 여전히 수난이다.

개고기는 맛도 맛이지만 보양식이란 명성까지 더해 특별대접을 받고 있다. 개탕의 다른 이름인 보신(補身)·보양(補陽)·영양(營養)탕은 모두 몸에 좋다는 의미다. 오죽하면 북한 속담에 '오뉴월에는 개 기름 한방울만 발등에 떨어져도 힘이 난다'고 했을까.

얼마전 병마를 털고 재기한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기가 좀체로 충전되지 않아 개고기를 (많이)먹었다'고 해 관심을 모았다.

보신탕 애호가들을 두고 '한국적 애견가' 라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남의 음식문화를 두고 나무라는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는 지구촌의 대표 동물애호가이지만 한국적 애견가들에게는 '공공의 적'이다.

보신탕이야 말로 우리 고유의 전통음식이며, 계승 발전돼야 한다는 당찬 외침도 있다.

하지만 한국적 애견가들에게도 점차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초복(初伏) 다음날인 지난달 17일 서울시 동숭동 대학로에서는 한 동물보호단체가 보신탕의 종말을 고(告) 했다.

이 단체는 '누렁이는 한국인들에겐 가족이었다'면서 누렁이 보호를 결사 다짐했다.

단체를 이끄는 모 교수는 '빈 집을 지키고 주인을 반기고 어떤 경우에도 배신하지 않는 충성스런 누렁이를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기세를 올렸다.

연간 140만마리(추산)가 식용되는 반면, 애완견 500만마리(추산)에 시장규모 1조7천억원인 대한민국 땅에서 개 싸움은 말릴 방도가 없는 필연으로 보인다.

개를 먹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정부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개인적 가치관의 문제다. 국제여론에 민감했던 군사정권도 88올림픽을 앞두고 고민 고민하다 기껏 뒷골목으로 숨기지 않았던가.

때문에 식용 논쟁은 사회적 관점에 맡기고 식용 개의 사육과 도축, 유통과정을 법적·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지고 있다.

식용개라고 해서 살찌도록 창살속에 가둬 길러 시궁창 옆에서 전기충격기로 혹은 몽둥이로 때려 죽이고, 가스불에 그슬리는 것은 학대를 넘어 야만이다.

90년대 후반기 정치권에서는 보건복지위 소속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개 사육과 도축, 유통과정이 위생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법률로 정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이왕 먹을 바에는 믿고 먹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당시 이들 의원은 무수한 돌멩이 세례에 시달렸다. 개고기를 내놓고 먹자는 것이냐는 동물보호단체의 비난이 쏟아졌고, 총선에서 보자는 협박도 가해졌다.

그 때문인가. 수년이 지난 지금, 그런 논의 조차 잠잠하다.
얼마전 노무현 대통령이 공직사회의 의식개혁을 거론하다 일부 공직자를 겨냥해 '개××' 소리 듣는다고 원색적으로 직격탄을 날렸다.

비록 '개××'로 만든 음식일지언정 믿고 먹을 수 있도록 대통령과 정치권이 나서달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소리'한다고 할까./홍정표(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