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역사의식의 청산

마침내 인천 개항 100주년 기념탑이 지난주부터 철거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일제가 인천을 강제로 개항(1883년)한 지 100년 되는 것을 기리겠다며 세운 탑과 그 조형물이 20년 만에 헐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기념탑의 잔해를 보는 심정은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론 착잡하다.

개항 100주년 기념탑은 치욕의 역사 상징물이자, 부끄러운 인천의 자화상이었다. 36년 간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압박과 설움을 당했던 우리가 어떻게 이런 해괴망측한 일을 벌일 수 있었을까. 일부 공무원들은 군사독재 시절 일방·강압적인 행정의 소산이었다고 변명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백 번을 양보하고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자기 나라를 빼앗은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기념하는 곳이 어디 또 있을까. 결국 왜곡된 역사의식이 문제인 것이다. 지나간 역사를 교훈으로 받아들이기는커녕, 비틀리고 굽은 역사의식으로 살아왔기에 이런 결과를 낳았다. 앞장서 기념탑을 만든 사람들이나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었던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다.

물론 일을 하다 보면 시행착오를 겪거나 잘못을 저지르기 일쑤다. 하지만 그 것이 어처구니없는 정신과 의식에서 비롯하는 일이라면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정신나간 상태에서 하는 일에 무슨 꿈과 희망을 걸 수 있겠는가.
이제 11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지은 높이 30m의 개항 100주년 기념탑과 그 조형물은 다시 6억5천여만원을 들여 다음 달 중 완전히 철거된다.

이 기념탑은 인천의 얼굴인 인천항의 코앞에, 그리고 경인·서해안 고속도로 기점에 '우뚝' 서 있어 참으로 시민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또 기념탑으로 인한 교통체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기념탑이 헐린 자리에는 4억원을 들여 교차로 운행체계 개선사업을 벌인다고 한다. 기념탑은 곧 사라질 테지만, 시민들은 이 수치스러운 기념탑의 교훈을 결코 잊어선 안될 것이다.

#희망의 월미평화축제

이처럼 부끄러운 역사가 있는가 하면, 제국주의의 침략과 냉전의 상징 장소로 여겨지는 인천에서 '평화의 불씨'를 지피는 축제의 역사가 펼쳐져 희망을 갖는다.

지난 8월22일부터 9월7일까지 월미공원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등지에서 열린 '월미평화축제'가 그 것이다. 'War is not the answer'를 축제의 주제어로 내세워 월미평화포럼을 비롯 황해미술제, 문학의 밤, 평화솟대 세우기, 진혼굿,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반세기 이상 분단과 냉전의 한가운데서 온갖 아픔을 겪었던 인천에서 평화와 상생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내자는 게 축제의 모토였다.

월미도는 일제 침략의 교두보였고, 6·25 전쟁 중에는 인천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인천상륙작전의 첫 상륙지점으로서 초토화했다. 월미도의 중심이랄 수 있는 월미산은 2001년 공원으로 개방하기 전까지 50여년 간 군사기지로서 시민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렇듯 제국주의 침탈과 분단·냉전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월미도이기에 월미평화축제가 갖는 의미는 더욱 깊다.

오랫동안 항로단절 등과 함께 분단의 '볼모'로 침체를 거듭해온 인천. 그러나 한-중, 남-북 교류가 본격화하면서 인천은 활기를 되찾고 있다. 지난달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3개 지역이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돼 동북아 중심도시로서의 꿈을 키우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희망들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와 나아가 전 세계에 평화가 정착될 때 가능하다. 아무리 갖가지 '장밋빛 미래'를 설계하고 '꿈의 도시'를 건설하면 무엇하랴. 폭력과 전쟁, 역사의식의 부재 속에선 말짱 헛일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증오와 이기에서 빚어지는 그 모든 싸움과 다툼은 가라./이문일(인천본사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