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와 관련한 분쟁과 법적 소송이 봇물이다.

대통령이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를 제기하고, 변호사 수임비리 사건을 보도한 기자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억대의 손해배상 청구는 예삿일이고, 수십억대 소송도 등장했다.

'참여 정부는 소송 정부'라는 비아냥이 헛소리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주 문광부 국감에서 모 의원은 대통령 비서실의 언론을 상대로 한 소송 가액이 47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언론을 상대로 낸 손배청구액만 30억원이다.

국감장에 나온 이창동 문광부장관은 의원들의 뭇매에 시달려야 했다. '국민의 혈세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는 죄였다. 이 장관 보다는 대통령을 겨냥한 독설일 터이다.

언론, 특히 일부 신문과 참여 정부간 갈등은 갈수록 더 험악해지는 양상이다.

대통령 조차 “저녁에 TV만 보면 기죽는데, 아침에 신문을 보면 기죽는 수준이 아니라 눈앞이 캄캄”하단다.

얼마 전 청와대는 대통령 부인의 부동산 투기의혹을 보도한 모 신문과는 취재를 전면 거부한다고 했다. 출입기자의 질문을 대변인이 애써 외면하는 어색한 브리핑은 실소(失笑)할 일이다.

문광부는 여전히 조석(朝夕)으로 언론 보도내용을 따져보고 있다.
참여 정부들어 제기된 대부분의 언론 소송은 언론중재위원회를 건너 뛰고 있다. 빠르고 강하게 응징하려는 의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방 언론도 소송에 휘말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본보의 경우 한국토지공사, 이대엽 성남시장과 다툼하고 있다.

토공은 지난 5월 '동탄신도시 공동주택 시범단지 특혜분양 의혹' 보도와 관련, 민·형사소송을 냈다. '분양업체가 당초 3개사에서 6개사로 늘어난 것은 특혜 아니냐'는 지적이 잘못이란 게 그들의 주장이다. 같은 달 한국기자협회와 언론재단은 이 기사를 '이달의 기자상'으로 선정했다. 사법당국은 형사 무혐의 처분했다.

이 시장은 조카의 비리 의혹을 제기한데 대해 '개입한 게 없는데 자신의 이름을 들먹여 명예를 훼손했다'는 취지로 지난 5월 소송을 냈다. 조카는 구속기소됐다.

본보가 '이 시장의 조카'라고 명시한 이유는 그가 고위 공직자여서다. 시장선거에서 낙선한 야인이라면 이름을 넣어달라고 애걸해도 안될 소리다.
공직자의 언론소송은 비록 무혐의 종결되더라도 진행과정에서 심각한 물적·정신적 부담으로 작용해 보도위축을 초래한다.

이런 이유로 구미(歐美)의 여러 나라는 고위공직자의 명예훼손 소송의 경우 각종 제한을 두는 등 남소(濫訴)를 막기 위한 장치를 두고 있다.

미국은 1964년 연방대법원의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 이후 고위공직자의 명예훼손 소송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피고(언론사)의 주장이 허위일뿐 아니라 피고가 악의를 가지고 있음을 명백하게 증명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원고(공직자)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했다.

캘리포니아주는 한발 더 나아가 고위공직자들이 언론의 자유를 막고, 비판을 봉쇄하려 전략적 소송(strategic lawsuit)을 제기하는 것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인이나 공익에 관한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언론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법기관의 판단이 잇따르고 있다.

1999년 헌법재판소는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훼손 소송의 피해자가 공인이거나 보도내용이 공적 관심사안이라면 명예훼손적 표현이라 하더라도 언론자유를 고려해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언론이 우월적 위치에서 공인을 악의적으로 매도해 명예를 떨어뜨렸다면 엄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공직자들이 정당한 비판에도 소장을 들이미는 것 역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공직자라면 모름지기 언론과 다투기 전에 “(설사) 보도내용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진실이라고 오인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홍정표(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