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교사신축을 위한 기부를 요청하고자 카네기를 찾아왔다. 마침 카네기는 서재에서 두개의 초를 켜놓고 책을 읽다가 손님이 들어오자 초 한개를 껐다. 이를 본 교장선생님은 내심 이정도로 인색한 사람이면 기부금을 쉽게 내놓을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찾아온 용건을 털어놨다. 그러나 카네기는 예상과는 달리 선선히 기부금을 내놓았고 한개의 촛불을 끈 이유가 궁금해진 교장선생님은 카네기에게 물었다. 이에 카네기는 책을 읽을 때는 두개의 초가 필요하지만 이야기를 나눌 때는 한개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철강왕으로 불릴 만큼 막대한 부를 쥐고도 지극히 검소했던 카네기에 얽힌 에피소드는 무수히 많다. 스코틀랜드출신으로 가난한 수직공의 아들로 태어난 카네기는 가족과 함께 미국 펜실베이니아로 이주, 어릴 때부터 방적공, 전보배달원 등 궂은 일을 전전하다 철강업으로 크게 성공한 사업가다. 그러나 카네기는 일생의 반은 부를 축적하고 나머지 반은 그동안 쌓은 부를 사회봉사를 위해 사용해야한다는 신념을 실천한 인물로 세계적인 기업을 일군 사업가보다는 남을 돕는 일에 돈을 아끼지않은 위대한 자선사업가로 지금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경을 받고있다.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인 지미카터의 퇴임후 봉사활동도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카터는 해군에서 퇴역한 후 가업인 땅콩농장을 물려받아 경영하다 정계에 투신, 상원의원, 주지사를 거치고 예상을 뒤집는 파란끝에 백악관 입성에 성공하는 등 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그러나 카터는 재임시절 경제정책의 파탄과 이란인질 구출실패 등의 시련으로 제2차 전략무기제한협정이라는 외교성과에도 불구하고 연임에 실패한 몇 안되는 미국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록되는 불운을 겪었지만 오히려 퇴임이후 현직 대통령을 웃도는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차라리 현직을 거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말이 나돌 만큼 전직 대통령으로서 지구촌 곳곳을 누비는 그의 왕성한 활동은 인상적이다. 무능한 대통령으로 각인된 채 고향으로 돌아온 카터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100만달러의 빚을 안고있는 땅콩농장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국제평화와 사회봉사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한 끝에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으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전직대통령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지난 2001년 무더운 여름에 내한, 허름한 작업복차림으로 사랑의 집짓기에 나서 구슬땀을 흘리던 모습은 우리네 전직 대통령의 움츠린 근황과 비교할 때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높은 신분일수록 더 많은 책임을 져야한다는 뜻이다. 힘있는 이들이 더 큰 힘을 얻고자 변칙과 편법을 마다않는 사회일수록 이 말이 지닌 의미는 보다 절실해진다. 가진 자는 못가진 자와 나누고 힘있는 자는 힘없는 자를 돕는 지혜를 가질 때 그들의 부와 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최소한의 정당성을 갖추기 마련이다. 부와 권력이 대를 잇는 경우를 찾기 어려운 것도 가진 것을 독식하고자 하는 어리석음을 떨쳐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카네기와 카터가 존경을 받는 것 또한 그들이 나눔의 지혜를 터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대선에서의 불법자금 모금을 놓고 정·재계의 내로라하는 이들이 줄줄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가진 자에게 더 보태주고 힘있는 자에게 더 힘을 실어줘 자기만의 부와 힘을 더 크게 향유하겠다는 욕심이 지나쳤던 결과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듯이 카네기와 카터처럼 자기희생을 담보로 해 남을 위해 철저하게 배타적인 이익을 버리는 지도자들이 많을 때 우리사회도 건전성을 유지하게 된다. 이제 이틀후면 정과 덕담을 나누던 설날이다. 유난히 나눔의 문화에 익숙했던 원래의 우리모습으로 돌아가자. 그래야만 온갖 병폐를 치유하겠다는 사회전반에 걸친 개혁도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이용식(지역사회부장)
진정한 나눔의 지혜
입력 2004-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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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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