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대명절이라는 한가위를 지냈다. 한가위는 본래 '계절의 한 가운데'를 뜻하는 말로 '풍요의 한 가운데'임을 말해준다. 가득 차고, 넉넉하고, 넘치는 때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한가위는 서민들에겐 '恨가위'가 되고 만 느낌이다.
시골 장터에서 만난 재래시장의 한 상인은 매출액이 지난해의 3분의1에 머물렀다며 울상이었다. 선물 살 돈과 차비가 없어 고향을 못 찾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라 하지 않은가. 추석전 재래시장을 찾은 정치인들에게 '소금이라도 뿌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소연하던 상인들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당장 가서 목격했던 고향의 농민들도 시름을 앓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많은 품목을 수입농산물에 내어주고, 쌀시장 개방의 파고가 밀려오는데다 나라 경제가 어둡고 괴롭다는 사실이 머리를 더 짓누른다. 그럼에도 정치는 갈수록 민생은 제쳐둔 채 엉뚱한 일에 매달리고 있고, 사회는 리더십을 잃어 '만인과 만인의 투쟁' 양상이다. 서민들은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자살자도 급증, 이미 교통사고 사망자의 숫자를 훨씬 넘어선 한 해 1만5천명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빚에 몰려서, 생활고를 못 이겨 목숨을 버리는 생계형 자살자가 하루 두 명꼴로 발생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세계 13위라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의료사각지대에 방치된 인구가 300만명을 훨씬 넘고, 전력요금이 3개월 밀려 단전조치된 집이 3만가구를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만성이 된 탓인지 정부나 정치권, 모두 전처럼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며칠전 TV토론에 나온 한 여당 국회의원도 정부에서는 경제회생에 전념하고 있는데 공연히 야당과 언론에서 위기감을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을 버젓이 하고 있다. 한심한 노릇이다. 과연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상황인가. 60~70년대 굴뚝산업으로 불리면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던 그 현장엔 지금 누가 있는가. 그 곳은 이제 3D 업종으로 분류돼 외국 노동력이 점령한 지 오래다. 실업자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어려운 일을 하려 들지 않는다. 아니, 이제는 그 어려운 일조차 할 곳이 점차 없어져 간다. 정부의 낙관론도 문제지만 야당 역시 정부·여당 탓만 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나 과거사 청산이 지금 이 순간에서 뭐 그리 중요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국민들의 반응이다.
그래서 60~70년대 새마을운동과 함께 산업화의 물결이 넘실대던 60~70년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도 이해가 간다. 가난했지만 희망이 있고, 뼛속 힘까지 쏟아내며 노력하던 그 시절을 지금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대부분 기성세대인 50~60대이지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대한민국 사회의 또 다른 그늘진 현실을 반영하는 하나의 패러다임일 수 있다. 그들의 지혜와 경험, 노하우까지 개혁을 빌미로 버려져선 안 된다. 단절 속에서 풍요의 축적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 민심은 “제발 싸우지 말고 경제를 살려달라”는 것으로 여기 저기서 확인됐다. 이번같이 절박한 때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정치권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자명해졌다. 과거사 청산이나, 국가보안법도 '먹고 사는 것'이 제대로 해결된 후에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 여론이다. '民心(민심)은 天心(천심)'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민생문제라면 정쟁 차원을 떠나 여·야가 따로없이 적극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제 시작된 국회의 국정감사에서도 정치권은 민생분야에 총력을 기울여 국민들이 고르게 잘 살 수 있도록 정책의 방향을 확실하게 제시해주어야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의 정치, 아름다운 관용의 정치를 통해 내년에는 국민들이 '恨가위'를 지내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이준구(문화체육부장)
'恨가위(?)'를 떠나보내며…
입력 2004-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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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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