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즉 부자(富者)와 빈자(貧者)의 차이는 가진 재물의 정도 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여유를 흔히 척도로 삼는 경우가 많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부자는 분명 빈자에 비해 보다 큰 마음적 여유를 갖는데 유리한 것은 틀림없다. 많은 재산을 갖고 있어도 여유가 없는 좁은 마음을 가진 부자를 참된 부자로 칭송하지 못하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정치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쟁이 주특기인 우리의 정치권은 '빈자(貧者)'의 씁쓸함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당·정, 여·야 간 사사로운 정파적 대립은 민안(民安)의 근간이 되고 대국민 봉사활동이란 명분이 우리정치엔 왠지 어색해 보인다.
 
최근 여야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소위 '4대법안' 등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안없는 '성매매방지법'과 소문만 무성했던, 실체도 없는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의 무책임한 발설' 등은 서글픈 우리 정치권의 현주소다.
 
성매매방지법은 바로 대표적 케이스가 아닐까. 졸지에 생존권을 잃은 집창촌 종사자들은 연일 생존권 보장 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공생관계의 숙박·미용업계 등은 아사직전이다. 관련업계는 연체 대출이 급증하는 등 경기불황에 죽고 급한 정책에 두번 죽은 꼴이 됐다.
 
정치권은 법 시행전, 관련 종사자들의 살 길을 찾아주는 대안을 먼저 제시해야 했다. 반발을 의식한 정치 여권은 뒤늦게나마 '탈(脫)성매매 여성'을 위한 긴급예산을 편성해 주거비 등을 지원하는 대안마련에 고민하는 눈치다. 의욕만 앞세워 후폭풍이란 경제 데미지(손상)를 입은 후 연착륙 유도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실체없는 '디노미네이션'도 마찬가지다. 한때 10만원권 등의 고액권 화폐 발행 검토가 아예 지폐의 액면을 동일비율로 낮추자는 디노미네이션 문제로 발전하더니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수면밑에 가라앉았다.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을 꺼내 또한번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경우다. 디노미네이션은 순수하게 화폐 가치보존이 전제가 된다 하더라도 국민 개개인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다 주는 민감한 사안이다. 따라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는데도 서로 입장도 정리안된 당정의 무책임한 말에 국민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거론시기는 또 어떤가. 물가와 국제수지가 안정되고 기업의 수익이 양호한 시기에 다뤄져야할 문제가 상황고민도 없이 무책임하게 흘러나온 것 같아 씁쓸하다. 문제의식을 가져보자는 것은 좋으나 자꾸 문제를 만들어내는 나열식은 곤란하다. 문제의식이란 문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흔히 정치권의 새로운 정책입안의 목적과 법안 평가의 기준은 나라 기틀을 튼튼히 하고 민생을 편안하게 해주는 국태민안(國泰民安)에 달려있다.
 
그러나 정부를 포함한 우리의 정치권은 민생은 뒷전이고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라는 식의 '흑묘백묘(黑猫白猫)'처럼 '진보'와 '보수'의 편가르기에 총력전을 펴고있는 듯하다. 최근 총리의 '한나라당 비하' 발언으로 파행길에 접어든 지금 우리 국회는 상임위별 새해 예산심사부터 기금관리기본법 등 무려 500여건에 달하는 계류법안의 심의와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
 
정말 식상한 정쟁을 훌훌 털고 국익과 민생을 먼저 챙겨 주길 바라는 민초들의 소박한 바람은 한낱 허황된 꿈에 불과한 걸까. 정녕 감동과 여유를 보여주는 '부(富)의 정치'는 아니더라도 이를 갈구하는 국민들의 소박한 마음이나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식이 통하고 여유가 있는 포용력을 갖춘 큰 정치가 그립다. /심재호(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