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년 벽두, 영남(嶺南) 민심이 싸늘하다.

TK(경북) 목장 건초더미에 불씨를 던진 건 정부다. 정치 논리에 밀려 수년간 공을 들인 세계태권도공원을 무주에 넘겨줬다는 억울함에 경주와 TK가 분노하고 있다. 경주시 공원유치위는 문광부의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지역 경제가 결단났다는 아우성에 태권도 쓰나미까지 덮친 TK의 정초 민심은 그야말로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 TK와 한 몸인 PK(부산·경남)도 심기가 편치 않다.
 
칼 바람이 매운 호남엔 때 이른 봄바람이 훈훈하다.
 
연초에 나온 정부와 전남도의 'J프로젝트 공동추진' 발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낭보다. 해남 간척지 3천200만평에 골프장과 해양 리조트를 갖춘 복합레저도시를 건설하는 이 사업은 국내·외 자본 300억달러(32조여원)를 쏟아 붓는 울트라 메가톤급 대역사(大役事)다. DJ 정부시절에도 이만한 호사가 있었던가. 벌써 남도 끝자락에 강력한 투기바람이 감지돼 사정당국이 칼을 들고 나섰다.
 
때마침 업무보고도 밀치고 여수에 달려간 오거돈 신임 해양수산부장관은 '여수·광양항을 팍팍 밀어주겠다'는 멘트를 날려 한번 더 확실하게 축제 분위기를 띄웠다. 부산시장 대행 시절 틈만 나면 '광양항 개발을 늦춰야 한다'고 엉겨 호남을 자극하고 참여정부를 궁색하게 한 장본인이 그다.
 
위헌판정으로 험악해진 충청 민심도 달라지고 있다.
 
새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구상하는 '충청 행정수도 건설안'을 은근히 반기는 눈치다. 15개 부처를 포함, 정부 기관 75개 가량을 옮기자는 것으로 위헌 논란을 걱정할 정도로 대담하다. 당장 위헌판정에 된서리를 맞았던 연기·공주에 난데없는 훈풍이 불고, 부동산이 꿈틀대고 있다. 정부의 주문(呪文)으로 부활한 '행정수도 이전'의 망령(亡靈)이 을유 새해, 충청권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호남이 환하고 충청이 일어서는 새해, 수도권은 말도 없다.
 
왜 침묵하는가? 다른 코드는 다 바꿔도 '수도권을 죽여야만 지방이 산다'고 옹고집인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에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사실 태권도공원은 경주보다 강화가 더 불만이다. 역사·지리·문화·사회·환경 등 모든 면에서 월등한 강화 땅은 한민족의 제단이 있는 민족성지다. 그런데도 정부는 동계올림픽 신청권과 태권도공원 입주권을 맞바꾸는 치졸한 꼼수를 썼다. 그런데도 강화는 의외로 잠잠하다. 마치 참여정부가 하는 일이라 수도권은 꿈도 안꿨다는 투다.
 
충청이 희망이면 과천은 절망이다. 연기로 떠날 정부청사를 바라보는 과천시민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경기도의 살림살이도 말이 아니다. 올 한해 허리띠를 졸라매도 안 될 지경이다. 요구액의 달랑 60%만 내려보낸 국고보조금은 굵직굵직한 기간사업들을 뒤흔들고 있다. 수원 경기바이오센터는 반쪽이 났고, 고양관광문화단지 사업은 아예 물건너 갈 처지다.
 
정초 댓바람에 건교부 장관을 찾은 손학규 도지사는 '그린벨트를 풀어 임대주택을 짓는 일만은 막아 달라'고 통사정했다. 지역실정에 맞지도 않고 자칫 난개발을 부를 게 뻔하다며 그냥 놔두는 게 도와주는 것이란 해괴한 사정을 한 것이다.
 
새해들어 노 대통령은 '지난해와 같은 갈등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사고치는 말은 가급적 피하고 경제에 올인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췄다. 그러나 수도권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수도이전에 반대하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중앙정부에 강력히 맞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대중교통체계를 바꾸는 문제를 놓고서도 힘겨루기를 했다.
 
이제 경기·인천도 중앙정부와 계급장을 떼고 맞장을 뜨게 될 지 모르는 상황으로 치닫는 느낌이다./홍정표(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