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와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연일 수도권 발전 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품새가 하도 요란해 수도권 지자체와 주민들이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정부와 여당 말대로라면 수원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공장을 지을 수 있고, 평택에는 4년제 대학도 들어서게 된다.
 
뿐만 아니다. 정부는 수십년 동안 수도권을 옥죄어 온 거미줄 규제를 하루 아침에 풀어 내는 마법(魔法)도 보여줄 참이다. 오락가락, 해프닝이었지만 100만 성남 시민들은 한때 서울공항 자리에 아파트 단지가 뚝딱 들어서는 줄 설레였다.
 
균형발전을 기치로 수도권을 홀대해 온 참여정부와 여당의 갑작스런 '사랑 고백'은 가증스런 위선이다. 싸늘하게 식은 수도권 민심을 돌려보려는 사탕발림이요, 순애를 향한 중배의 '작업용' 다이아 반지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과천청사를 비우고, 공공기관을 내려보내고, 4·30 보선까지 챙기려고 정부와 여당은 지금, 마음에도 없는 수도권 껴안기에 혈안이다.
 
정부·여당의 노골적인 유혹에도 수도권은 요지부동이다. 진앙지 과천이 불끈 일어나더니 성난 파도가 성남으로 몰아쳤다. 광명에 지역구를 둔 전재희 의원은 목숨을 건 '단식 투쟁'으로 기름을 부었다. 그가 탈진하자 심재철 의원이 다시 자리를 깔았다. 반대 결의안을 낸 경기도의원들은 곧바로 서울시청앞 광장으로 내쳐 달렸다.
 
일요일인 지난 13일 저녁, 도지사 공관에 모인 기초단체장들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손학규 도지사의 간곡한 설득에도 격론이 벌어졌고, 역시 '(행정도시 이전은) 안 된다'는 쪽이었다고 한다. 모 시장은 '내가 앞장설테니 따라 오라'고 격앙가를 불렀다.
 
수도권의 성난 민심에 놀란 한나라당은 죽을 맛이다. 특별법에 들러리를 서는 자충수로 '무늬만 야당'이란 태생적 한계를 다시 보여줬을 뿐이다. '국가 발전을 위한 어려운 선택이었다'는 목소리는 사그라든지 오래고,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기관 이전 테이블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슬그머니 발을 빼려는 것이다.
 
힘들기는 손 지사도 마찬가지다.
 
'여·야 합의는 존중돼야 한다'고 한 게 화근이었다. 당장 '대권을 의식해 도민들의 정서와 달리 앞서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사실 손 지사는 수도이전과 관련,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명박 서울시장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사는 길이라면, 더구나 여·야 정치권이 합의한다면 (행정도시 이전도) 괜찮다고 한 것이다. 이 시장이 중앙정부를 향해 줄곧 '계급장 떼고 붙어보자'며 악다구니를 썼을 때도 '정치권이 할 일'이라며 물러서곤 했다. 심대평 충남지사와는 '수도권과 충청이 상생하자'고 손을 맞잡았다.
 
그렇더라도 특별법의 파괴력과 저항의 크기를 가늠했어야 한다. 경기도가 서둘러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절반 이상이 '과천청사 이전은 안 된다'였다. 이런 판에 행정도시 이전을 전제로 '공공기관을 무 뽑듯 (이전)해서는 안된다'고 해 본들 누가 공감하겠는가.
 
정부·여당이 쏟아내는 수도권 규제완화는 행정도시와는 별개로 추진해야 할 사안이다. 과도한 수도권 억누르기의 반증이지 행정도시 건설과 맞바꿀 거래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 정부도 공공기관 이전계획안을 어영부영 늦추고 있다. 뻔한 눈치다. 4·30 보선이 코 앞인데다 민심이 두려운 거다.
 
행정도시 건설은 위헌 판정이 난 행정수도 이전에 버금가는 내용이다. 위헌소송이 이어지고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과천청사가 통째로 비어지고 공공기관이 줄줄이 떠나는 순간, 정부·여당의 러브 콜도 거기까지다. 최대한 보상을 받아 내자는 말은 아직 때 이르다. 지금은 총력으로 길을 막아서야 한다./홍정표(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