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가 널리 읽히는 것은 개성이 넘치는 다양한 인물 등장탓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한자의 독특한 묘미를 살린 고사성어 때문이다. 불리할 때는 우선 후퇴부터 하라는 삼십육계나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나라의 질서를 잡기위해서는 목을 치는 읍참마속 등 삼국지에 등장하는 이런 고사성어들은 험한 세상살이에 방책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어서 자주 쓰여진다.
요즈음 들어선 이보다도 자주 등장하는 고사성어가 있다. 바로 출사표(出師表)라는 단어다. 출사표라는 고사가 다시 등장한 것을 보면 분명 선거철이 된 모양이다.

그런데 지방선거일이 아직 110여일이나 남았지만 지역 정가(政街) 사람들은 물론 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 벌써 핏발이 섰다. '누가 어디서 뭔 소리를 하나', '누가 어느 사람줄에 서 있나'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고, 일부에선 경쟁자의 '치부찾기'에 혈안이 돼 있다고 한다. 몇몇 지역 예비후보들은 힘있는 정당관계자들이 흘리는 낙하산 공천설에 피를 말리는 나날을 보내기도 한다. 본게임이 시작되기전에 선거전이 무섭고 살벌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 속도는 예비후보의 등록이 실시되면서 더욱 빨라지고 있다.

왜 지방선거가 이렇게 돼 갈까. 그 근저에는 '지면 죽는다'는 절박함이 깔려있다. 지방의 일꾼을 뽑는다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이 이뤄지면서 지방선거의 승리가 곧 대선에서의 승리로 이어진다는 정치적 해석이 그 저변에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각 정당마다 이번 지방선거를 대선의 전초전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부터는 기초의원들 까지도 고액의 급료를 받게되자 실업자들은 물론이고, 직장인들까지도 사표를 내 던지고 선거전에 뛰어들면서 조기 과열에 한몫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때이른 선거전이 정책대결은 실종되고, 그 자리에는 신변얘기만 난무하는 지극히 말초적이고 소아적인 정치싸움 판으로 변질되고 있다.

지방선거는 지역의 일꾼을 뽑는 축제라고 했다. 그런데 축제여야 할 지방선거가 벌써부터 싸움판이 돼가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 일차적 책임은 뭐라해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등 주요 정당들에 있다. 정책대결을 유도해야 할 정당들이 정치싸움판으로 만들고 있고, 후보들에겐 공천권을 내세워 은근히 엄포아닌 엄포로 '충성'을 유도한다. 그 수단의 하나가 낙하산 공천설의 유포다. 광역단체장 후보는 물론이고, 기초단체장에서 기초의원에 이르기까지 낙하산 공천설로 예비후보들이 떨고 있다. 물론 유능한 인사가 있다면 영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 지역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인사를 경력과 당의 충성도만을 내세워 낙하산 공천을 하려 한다는 점이다. 인천, 경기지역에 연도 없는 인사가 정당의 공천만을 받아 출마를 한다면 짧은임기(5년)동안 지리공부(?)나 하다가 허송세월을 하게 마련이다. 우리 지역의 현안에 대해 깊이있는 통찰을 하지못해 엉뚱한 행정을 펴거나, 어떻게 하는 것이 그 지역에 이로운 지를 판단하지 못한 채 견제를 위한 비판에만 주력하는 지방의원들을 왕왕 보지 않았는가. 좀 부족한 듯 해도 지역과 연이 있는 인사를 등용시켜야만 애향심을 갖게 되고 지역이 발전한다. 그래서 낙하산 공천은 초장부터 막아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사실 지방선거는 정직하고 유능한 지역인물을 고르는 것이지 정치꾼이나 스타를 뽑는 것은 아니다. 우리 지역을 통합할 수 있고, 시민들에게 활력을 안겨주는 미래 지향적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면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선만 되면 된다는 정치꾼은 일찌감치 몰아내고, 올바른 정책을 내걸고 지지를 호소하는 '지방정치인'을 길러내야 한다. 너무 중앙정부 지향적인 인물은 일단 경계대상이다. 점점 살벌해져가는 출사표의 계절, 냉정함을 찾아야겠다.

/김 은 환(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