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 24일 재정경제부는 5억5천만 달러 규모의 담배인삼공사(현 KT&G) 주식을 해외에 매각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정부지분 13.8% 와 기업은행 지분 25.2%중 6.2%에 해당하는 규모. 당시 매각을 주도한 김병기 재경부 국고국장은 “담배인삼공사 주식 해외매각은 미국 테러사태 이후 아시아 최초의 DR 매각 사례”며 “국내외 경제 여건의 불확실성 증대로 DR 매각 성공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해외투자자의 수요흐름 변화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매각시기를 결정한 것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4년 4개월후인 2006년 2월 24일 무시무시한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은 KT&G에 대해 '적대적 M&A'에 나선다고 선언했다. 아이칸이 연합세력중 하나인 '스틸파트너스'펀드의 워렌 리크텐슈타인 대표는 이날 KT&G 사장에게 편지를 보내 '주당 6만원에 KT&G 지분 2조원어치를 매입해 경영권을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아이칸의 적대적 인수합병이 성공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내로라 하는 알짜기업이 기업사냥꾼의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에 정부와 재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불과 4년여전 KT&G 주식 해외매각에 고무되었던 정부의 충격은 더욱 컸을 것이다. 재계는 즉각 “경영권 방어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금융권에서는 뒤늦게 KT&G의 백기사를 자청하며 우호지분 확보에 주력하겠다고 나섰다. 주식형 펀드규모가 사상 최대며 이를 바탕으로 기관들의 영향력이 그 어느때보다 막강한 지금 적대적 인수합병이라니….
3월1일 이해찬 총리는 한때 주가조작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던 부산의 한 기업인과 내기 골프를 쳤다. 여기에는 한때 교원공제회 이사장이었던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국내 주식시장에서 몇 손가락안에 드는 기관투자기관인 교직원공제회가 주가조작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던 기업인이 소유한 회사의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교원공제회는 지난해 9월9일부터 10월 18일까지 100억원을 투입해 Y제분의 주식 80여만주를 사들여 지분을 7.5%에서 9.1%로 늘렸고 주가를 3천200원에서 6천100원으로 100%나 끌어 올렸다. 열흘 뒤 Y제분은 자사주 195만주를 평균가격 5천원에 또 다른 기관에 매각해 68억원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 최근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Y제분 주가조작의혹사건'이다. 가장 정석적인 투자를 한다는 교원공제회마저 주가조작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더욱이 이런 사실도 모른채 Y제분을 고가에 매입했던 개미투자가들은 원금의 반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교원공제회는 우리 주식시장에서 막강한 자금력과 영향력이 있는 기관투자가다. 자산 규모가 무려 12조원이다. 기관투자가의 큰 덕목은 주식시장의 안전판의 기능이다. 급락과 급등을 적절히 제어해 주어야 한다. 코스피시장에 상장된 주식의 40%를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기관투자가는 외국인들의 대항마로서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교원공제회의 행태에서 나타나듯이 최근 우리의 기관투자가들이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투기적인 성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지난 1월 1천450선을 넘나들던 코스피 지수는 기관투자가의 지속적인 매도로 1천300선까지 떨어졌다. 더욱이 코스닥시장에서는 무려 한달이 넘게 순매도로 일관했다. 만일 기관투자가들이 국내 우량주식에 장기투자의 철칙을 지켰다면 아이칸의 KT&G 인수합병 시도도 쉽게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칸의 인수합병 시도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들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우량기업들이 부지기수다. 요즘처럼 기관투자가들이 개미투자가 처럼 단타매매의 재미에 빠져들거나, 주가조작에 뛰어든다면 기관 스스로 주식시장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교원공제회의 제분 지분인수는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이 영 재(경제부장)
KT&G, Y제분 그리고 기관투자가
입력 2006-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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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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