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믿는 것이 내 몸에 달렸으니/절기도 진퇴있고 연사도 풍흉있어/수한풍박(水旱風雹) 잠시 재앙 없다야 하랴마는/극진히 힘을 들여 가솔이 일심하면/아무리 살년(殺年)에도 아사(餓死)는 면하느니/제 시골 제 지 어 소동(騷動)할 뜻 두지 마소/황천(皇天)이 지인(至仁)하사 노하심도 일시로다/자네도 헤어보아 십년을 가령(假令)하면/칠분은 풍년이오 삼분은 흉년이라….
 조선 헌종 때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의 맺음구다. 농사는 원래 하늘이 짓는 것이라 했다. 알맞은 일조량과 강수량 뿐 아니라 때맞춰 불어주는 바람까지도 합해 곡식이 영글고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여기에 농민의 땀과 정성이 함께 할 때 그 수확은 풍성하다.
 지난해 많은 자연재해가 있었음에도 농사가 풍년을 이뤘다. 쌀의 경우 3만677만석의 수확을 거둠으로써 주곡의 자급을 가능케했고, 오히려 쌀의 과잉재고가 문제로 제기, 재고미의 일부를 소주 주정으로 사용할 계획까지 발표한 바 있다.
 사과와 배, 단감 등 각종 과일류도 풍작을 이뤘으며 무, 배추 등 채소류도 그 작황이 좋았다. 하늘과 농심이 합하여 풍작을 이뤄냈으나, 지난해 각종 농산물 가격이 하락해 농심을 멍들게 했다.
 그런데 지난 7일 20년만의 폭설이 내려 전국이 큰 난리를 겪었다. 항공기가 운행되지 못하고 도로가 막혔으며 마을이 고립된 곳도 있었다. 많은 재산피해와 인명피해까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농업부분의 피해가 또 가장 클 것 같다.
 비닐하우스 수천채가 붕괴돼 딸기와 토마토, 화훼및 각종 시설채소 농사가 피해를 입었으며 축사가 무너져 내려 돼지와 닭 등이 떼죽음을 당했다. 그야말로 천재라 할 것이다. 20년만의 폭설이라하니 근래 20년간 겨울에 이만한 재해를 당해보지 않았고 그에 대한 대비 또한 미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농심이 또 큰 상처를 입었다. 농업은 하늘과 농심이 합해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산업이다. 21세기 최첨단 시대에 많은 가치가 창조돼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고해도 그 기본에는 먹거리가 있는 것이다. 먹거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삶의 질 문제를 논할 수 없다. 그 먹거리를 생산해 내는 것은 현재의 과학의 힘으로는 오로지 농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천재에 대비,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첨단과학기술을 활용한 재해예측 기술을 발전시켜 미리 예방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 그러나 아무리 잘 대비한다 하더라도 하늘이 하는 일을 인간이 모두 막아낼 수는 없으며 어쩔 수 없이 발생하게 되는 재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때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의지와 힘이 필요하며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노력과 정신력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정부에서는 농업재해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농작물재해보험법을 마련 중이다.
 올해 3월 1일부터 시행될 이 제도는 우선 사과와 배에 대해서만 적용되며, 정부는 보험료의 일부(순보험료 30%, 부가보험료 50%)와 재해보험의 운영관리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것으로 돼있다. 아직은 그 내용이 빈약하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조속히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 나간다면 앞으로 천재로 인해 농심이 멍드는 일이 덜어질 것이다.
 농심이 천심이라 했다. 천재가 발생해도 농심이 상처받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겠다. <조웅원(경기농협지역본부 유통지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