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측근비리의혹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데 대해 한나라당이 “이제 국정혼란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며 무한투쟁에 돌입키로 함에 따라 정국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한나라당은 거부권 행사 이후 비대위 회의와 의원총회를 긴급 소집, 국회 의안심의 거부 및 본회의장 농성과 등원거부, 의원직 총사퇴 등 초강경 대응방침을 결정키로해 현정권 출범이후 청와대와 한나라당간 정면대치가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원내 과반수 의석을 점한 한나라당이 의안심의나 등원거부를 강행할 경우 의결정족수 미달로 각종 법안은 물론 예결위에 심사중인 새해 예산의 연내처리도 불가능해져 내년 예산은 올 집행액을 기준으로 편성한 준예산을 통해 집행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기에 한나라당이 사실상 '국회해산'에 해당하는 의원직총사퇴서라는 초강력카드를 뽑아들며 노 대통령 하야운동에 돌입하게 되면 정국은 그야말로 '정치실종'과 퇴로없는 무한대치만이 존재하는 비상사태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국대치가 장기화될 경우 그렇지 않아도 LG카드사태 등으로 불안한 경제상황을 악화시키면서 정치권 전반에 대한 비판여론이 급등하게 돼 양측이 타협을 모색하는 여건도 형성될 것으로 보여 막후 절충 여부가 주목된다.

내년 총선을 4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헌법상 규정된 재의 대신 전면투쟁을 택한 한나라당의 대응에 대한 여론도 그다지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청와대로서도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특검법을 공포해야 한다고 답한 점에서 거부권 행사에 대한 부담이 있다는 게 한나라당의 분석이다. 그러나 상황반전에는 한나라당의 벼랑끝 전술에 대한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등 여권의 대응과 지난 10일 특검법 처리 당시 잠재적 우군이었던 민주당과 자민련의 향후 행보가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이 의원직사퇴라는 카드까지 꺼내면서 총력투쟁 방침을 천명했음에도 “협박정치는 사라져야 한다”며 거부권 행사를 강행한 이면에는 극렬투쟁 일변도의 한나라당 대응방식에 대한 여론향배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검찰수사 뒤 새특검법 수용' 방침을 밝혀 향후 특검수용 여지를 남긴 것도 한나라당의 극한투쟁의 명분을 약화시켜 투쟁노선의 재검토를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또 민주당과 자민련이 거부권 행사에는 비판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한나라당의 전면투쟁에 대해서도 “비정상적 방법으로 동조할 수 없다”(민주당 박상천 대표) “정신착란 증세”(자민련 유운영 대변인) 라고 비판하는 것도 한나라당에게 부담이다.

여기에 거부권 행사를 둘러싼 대치정국이 계속될 때 당초 “정당하게 재의에 임하자”는 의견을 내온 한나라당내 소장파 의원들의 행보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런 안팎의 사정을 고려할 때 한나라당 당 지도부가 공언한 '농성-등원거부-총사퇴'라는 3단계전략 가운데 어느 단계까지 실현될 지는 미지수란 것이 대체적 분석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