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과 관련, 기각 결정을 선고한 헌법재판소는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과 관련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이지만 대통령직에서 파면될 만큼 중대한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결정이유로 삼았다.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여부=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 등은 사실관계가 명확한 만큼 당초부터 법리적 쟁점으로 부각됐던 부분이다.

재판부는 지난 2월18일 경인지역 6개 언론사와의 기자회견, 같은달 24일 방송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나온 노 대통령의 여당 지지발언이 공무원선거법 제9조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에 위반됐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선거중립 의무를 가진 공무원에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 의원을 제외하고는 대통령 등 정치적인 공무원도 포함된다고 보고 노 대통령의 발언이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왜곡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는 것으로 봤다.

이는 소추위원측의 핵심 소추사유인 선거법 위반관련 주장을 상당부분 인정한 것으로 선거법 9조가 선언적 규정인 데다 정무직 공무원인 대통령에게까지 적용하기는 무리라는 대통령 대리인단측과 충돌되는 만큼 향후에도 논란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법 유감발언과 재신임 투표 제안행위도 위법=중앙선관위의 대통령 선거법 위반 결정과 관련해 청와대측에서 유감을 표명하면서 현행 선거법을 '관권선거시대의 유물'로 지칭한 것과 관련, 헌재는 현행법의 정당성을 문제삼는 것은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대통령이 법을 무시하는 발언을 거듭했다는 것은 소추위원측에서 공개변론을 통해 주장한 부분으로 양 당사자간 공방이 치열한 대목이 아니었으나 헌재가 최종결정을 통해 대통령의 '위법사실'로 판단한 몇 안되는 부분에 해당돼 관심을 끌고 있다.

헌재는 또 지난해 10월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과 관련, 대통령의 신임여부를 국민투표로 묻는 것은 명문에 나와있지 않는 등 형식상 옳지 않을 뿐 아니라 권한을 넘어선 것으로 국민투표 부의권을 위헌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측근 비리는 탄핵사유 안된다=소추위원측의 수사·재판기록에 대한 증거신청이 받아들여짐으로써 일약 쟁점으로 부각된 측근비리에 대해 헌재는 탄핵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최종 판단을 내렸다.

소추위원측은 노 대통령이 최도술·안희정씨 등 측근을 통해 용인땅 매매와 장수천 빚 변제과정에 개입했고 여택수씨 등이 썬앤문,롯데 등으로부터 불법정치 자금을 전달받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방조했다고 주장해 왔다.

헌재는 그러나 변론에서 제출된 자료들을 봐도 대통령이 이같은 비리사실을 지시·방조했거나 불법적으로 관여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 대통령의 비리연루 혐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경제파탄은 사법적 판단대상 아니다=소추위원측은 대통령의 취임선서에 나오는 '성실한 국정수행 의무'를 언급하며 노 대통령의 국정수행 능력이 미약한 점 역시 탄핵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사법적 판단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헌재는 대통령의 성실한 직무수행이 헌법적 의무이기는 하지만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므로 사법적 판단을 속성으로 하는 탄핵심판의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탄핵사유 얼마나 '중대'해야 하나=헌재가 이번 기각결정을 내리는데 중요한 판단대상이 됐던 부분으로 소추위원과 대통령 대리인단간의 공방이 있었던 부분.

대리인단은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 사실이 있어야만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가원수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가 된다고 주장한 반면, 소추위원측은 제헌국회 속기록과 해외사례를 들어 중대한 범법행위뿐 아니라 직무소홀, 정치적 무능력 등도 소추사유가 된다고 보고 있다.

헌재는 탄핵소추를 규정한 헌법 제65조 1항에 나온 '대통령의 헌법·법률 위반'이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위법행위여야 한다고 해석해 대통령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헌재의 탄핵심판 재량권 범위=소추위원측은 대통령의 위법·위헌 행위가 파면까지 가야 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할 권한은 국회에 있으므로 헌재는 탄핵의결의 절차적 적법성, 소추 사실의 존재여부만 판단하면 된다는 주장을 내 놓은 바 있다.

반면 대통령측은 구체적 사실의 위법 여부는 물론 해당 사실이 대통령을 탄핵에 이르게 할 만큼 중대한 것인지, 탄핵 결정이 국가에 미치는 영향 등을 총체적으로 판단할 권한이 있다고 맞서 쟁점이 됐다.

헌재는 이번 선고 앞부분에 '탄핵심판의 본질'을 제시하면서 탄핵절차가 정치적 심판절차가 아닌 규범적 심판절차라고 보았으며 탄핵 소추의 목적 역시 '정치적 이유가 아닌 법위반을 이유로 하는 대통령의 파면'이라고 밝혀 헌재의 판단이 사법적 성격에 한정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