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참사 이후 처음 실시된 미국 대선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사실상 성공함으로써 미국 유권자들은 이라크 전쟁, 테러와의 전쟁, 경제 정책 등에 대한 부시 선장의 현 '항로 유지'를 승인했다.

미 유권자들은 선거전에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시 대통령의 업무수행에대해 50% 이상의 점수를 준 경우가 드물었던 만큼, 이번 선거 결과는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는 데 따른 불안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권력·보수화 강화=특히 이번에 함께 실시된 상·하 양원 선거를 통해 양원에 대한 공화당의 지배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제2기 임기 중 대법원 판사 9명 가운데 많게는 4명을 새로 임명할 가능성이 있어 현재 5대 4인 보수대 진보의 대법원 성향이 더욱 보수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미국의 행정, 입법, 사법 3부에 대한 보수세력의 지배가 더욱 확고해지게 됐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3일 오전 1시30분(현지시간) 현재 일반국민 투표에서도 존 케리 민주당 후보를 2% 포인트 차로 누름으로써, 4년전 일반국민 투표에서 지고도 선거인단 선거에서 법원의 판결로 당선된 데 따른 정통성 시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부담도 깨끗이 씻게 됐다.

부시 대통령은 이같이 정통성 시비를 불식한 데다 공화당 지배가 더욱 강해진의회와 보수성향이 더 짙어질 대법원의 뒷받침, 게다가 '전시 대통령'의 위상까지 더해 정치적 권위는 아닐지라도 권력 측면에선 미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통령 반열에 속하게 됐다.

●국민통합 과제=그러나 CNN의 개표 방송에 출연한 부시 대통령의 카렌 휴즈보좌관에게 래리 킹이 “부시 대통령이 재선되면 분열된 국민 통합에 나설 것이냐”고 물은 것은 부시 대통령 제2기 임기의 최대 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부시 대통령이 재선되든, 케리 후보가 당선되든 양분된 미국 사회의 국민 통합이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선거전부터 입을 모을 정도로 미국 사회의 양극화는 심각한 실정이다.

미국 사회의 양분 현상은 2000년 대선 분쟁에서 비롯돼 정치적으론 이라크 전쟁과 경제적으론 빈부 격차의 심화로 더욱 악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대외 정책=제2기 임기를 맞는 부시 대통령이 건너야 할 가장 큰 가시밭길은 역시 이라크문제이다.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이 크게 약해진 가운데 이미 1천100명에 이르고 계속 늘어나는 미군 사망자를 줄이면서 발을 빼야 하지만, 이라크를 아랍세계의 모범적인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재건한다는 목표도 달성해야 하는데 이를 도와줄 맹방들은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부시 대통령은 또 전 세계의 테러 근절을 공약하며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도 중도 포기할 수 없다.

이란 핵문제와 함께 핵확산 금지라는 미국의 3대 외교안보정책의 최우선 대상인 북한 핵문제의 경우 부시 대통령은 일단 6자회담 조기 재개를 추진하겠지만, 설사 북한이 응할지라도 기존 미국과 북한 입장대로라면 해결보다는 충돌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대내 정책=부시 대통령은 미 의회에서 공화당 지배가 강화되는 것을 계기로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또 임기 중 있을 대법관 수명의 교체를 통해 대법원 판사들의 이념이 보수쪽으로 더 많이 기울게 될 경우 지난 1973년 여성의 낙태권리를 인정한 대법원의 '로 대(對) 웨이드'사건 판결을 재심하는 상황도 예상되는 등 종교적·사회적 보수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경제와 사회복지 등의 측면에선 한달 40억달러의 이라크전비를 포함해 막대한 재정적자 때문에 정책 수단 선택폭이 넓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