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좌표를 잃고 표류하고 있다. 방향타도 없고, 엔진도 꺼진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30조원!' 사행성 오락에 사용하기 위해 공식 발행된 상품권 액수만 30조원 규모다. 이 상품권이 전국 방방곡곡의 성인오락실에서 환금되어 재사용된 액수를 합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액수로 추정된다.
사행성 오락게임 `바다이야기'가 무수한 의혹과 설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여권 전체가 밤바다 같은 깊은 침묵속에서 사태의 전개를 주시중이다. 간혹 한마디 나온다는 것이 탄식 일색이다. 지난 21일 한 여권 중진의원은 `바다이야기 파문'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조카 노지원씨 이름이 끊임없이 거론되는 상황에 대해 “조카가 삼촌의 바다를 삼켰다”며 탄식했다. 이 중진은 “유진룡 전 문화부차관에 대한 경솔한 경질이 오늘의 사태를 불렀다”고 해석하면서 “지방선거뒤 민심의 충고를 겸허히 수용했어야 했다. 늦었다”고 말했다.
문화관광위 여당 의원들도 사태 해결을 위한 접근 방법은 물론, 대야 대응방안, 청와대와의 관계설정 등을 놓고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모습이다. 문광위 소속 한 여당 의원은 “솔직히 실체적 진실은 커녕, 사건의 윤곽조차 모르겠다”며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어찌됐든, 사행성 오락이 전국적으로 횡행한 것은 참여정부의 분명한 정책 실패”라며 침통한 표정이었다.
지난 21일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다양한 견해와 해법들이 쏟아졌다. “야당의 왜곡된 정치 공방에 휘말려서는 안된다”는 게 주종을 이뤘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뼈아픈 자성을 위한 비판적 대안도 제시됐다. “여당이 먼저 나서서 국정조사를 주도하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엄정하게 수사하여 여권에 관련자들이 있다면 원칙대로 처리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자는 얘기다. 그러나 자기 혁신적인 주장은 회의가 진행되면서 꼬리를 말았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한 중진의원은 “민심을 외면하다 못해 거스르고 있다”면서 “결국 큰 일을 당할 정신없는 사람들”이라고 탄식했다. 청와대와 친노 직계의원들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대통령 가족은 관계없다'는 도덕적 자존심을 강조했던 청와대는 정작 사태가 참여정부의 엄청난 정책 실패로 판명되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데도 정작 사고의 발원(?)인 청와대 이백만 대통령 홍보수석비서관과 양정철 대통령 홍보기획비서관 등은 일체 입을 다물고 있다.
대신 대통령이 나섰다. 노 대통령은 지난주 “임기가 끝난뒤 당으로 돌아가고 싶다. 비상임 고문이라도 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당내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한 소장파 의원은 “(대통령은) 내년 대선도, 진보 진영의 존망에도 관심이 없다. 오로지 내후년 총선때 부산 경남지역에서 자신이 지원하는 몇 사람만 당선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라며 “지금 국민들은 노 대통령과 당을 정치판에서 완전히 물러가라고 요구하는 실정 아니냐”고 비난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초부터 최근까지 여러번 “임기중 친인척 비리는 없다”고 장담해 왔다. 친인척 비리만 없으면 집권 후반기 권력누수는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들의 임기말 사건들에서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그러나 퇴임 1년 남짓한 시점에서, 노 대통령의 조카는 사행성 오락게임 `바다이야기 게이트'의 한복판에 서 있고, 참여정부는 “문화부의 정책실패였다”고 실토했다.
노 대통령은 조카 문제가 떠오르자 “해당 부처의 정책집행 과정의 문제” 라면서 “청와대가 개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언급했다. 대통령 자신이나 청와대와는 관련없는 문화부의 정책실패이자, `자연인' 노지원씨의 개인적인 문제라는 것. 한명숙 총리의 후속발언 또한 자로 잰듯 똑같다. 한 총리는 22일 “사행성 게임 확산 사태는 문화부의 정책 판단과 관리의 문제”라면서 “경품용 상품권 도입에 따른 불법 환전 문제 등 부작용이 예상됐음에도 사전 검토를 소홀히 했다든지, 환전 행위 등 도박성 게임이 만연한데도 불구하고 근원적 대책없이 영상물등급위에 대한 게임물 재심의를 촉구하고, 제도 개선없는 단속 등 단기적인 대책으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주무부처인 문화부의 정책적 책임이라는 질책이다.
그러나 당내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수도권의 한 초선의원은 “지역구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큰 소리 칠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꼬리자르기냐”라는 국민적 불신이 심각하다는 것. 당내에서는 “조카의 바다이야기가 삼촌인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 후반기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삼켜버렸다”는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최소한 대통령의 정국 장악 능력과 인적 자원에 심대한 타격을 미친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당장 김병준 파문으로 인한 후임 교육부총리도 찾지 못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문재인·김병준 카드의 좌절에서 드러났듯이, 국민적 동의를 얻지못한 정책적 판단이나 인사는 불가능하다”는게 당내 중론이다.
당에서는 이제 당청관계를 정리해야 할 때가 됐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심상치 않은 기류는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중이다. 386의 선두주자인 김영춘 의원은 22일 “노무현 참여정부는 좌파적 수구정당으로 전락했다”면서 “통합중도세력의 미래 좌표를 설정하고, 세계화 물결속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대논쟁을 벌여가자”고 치고 나갔다.
당 대변인을 지낸 전병헌 의원도 “참여정부는 잘못되면 모든 것을 언론탓으로 돌렸다”면서 “자기편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는 극단적 언론 적대관이 협력을 받지 못하고, 야심찬 개혁 정책은 곳곳에 좌절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중심에는 박기춘·한광원 등 당내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은 30여명의 수도권 출신 의원들이 변화의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당청관계와 정계개편에 대해 의사표명을 자제해 온 마지막 그룹이다. `바다이야기'의 피날레가 노 대통령과 우리당과의 결별로 완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정황들 때문이다.
참여정부 '바다' 속에서 허우적
입력 2006-08-26 22: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6-08-26 2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
투표종료 2024-11-18 종료
경기도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역점사업이자 도민들의 관심이 집중돼 온 경기국제공항 건설 후보지를 '화성시·평택시·이천시'로 발표했습니다. 어디에 건설되길 바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