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해에 역시 외국계 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SK지분 14.99%를 확보하면서 SK그룹과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 최태원 회장 퇴진과 SK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까지 벌였던 소버린은 2년 뒤 약 1조원의 차익을 챙겨 한국을 떠났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9일, KT&G는 놀랄만한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한 중장기 마스터플랜’으로 명명된 이 계획에서 KT&G는 주주들을 위해 향후 3년간 배당과 자사주 소각에 2조8천억원을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당장 다음날에 주가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며 6만원을 넘어섰지만, 전문가들은 “씁쓸한 사상 최고가”라며 혹평을 했다. 앞서 KT&G의 경영권을 노려 주식을 매집한 칼 아이칸 측의 의도를 최대한 반영한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칸측은 KT&G의 주식 1천224만여주를 사들여 주가상승으로만 1천800여억원의 이익을 봤다. 게다가 KT&G가 마스터플랜에서 약속한 대로 주주들에게 배당을 돌려준다면 약 1천700억원의 추가 이익을 보게 됐다.
폭염이 쏟아지던 지난달, 쌍용차 노조원들이 무더위속에서 옥쇄파업에 들어갔다. 노조원들은 상하이차가 쌍용차 인수후 약속했던 거액의 투자는 뒷전으로 하고 오히려 쌍용차의 첨단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시켜 국내 자동차산업을 고사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상하이차가 지난해 5월 쌍용차의 핵심 기술인력을 중국에 파견해 중국업체들의 부품 생산능력 조사와 기술지도를 진행한 것이, 미리 빼돌린 쌍용차와 국내 부품업체들의 주요 부품설계 도면으로 중국측 공장에서 부품을 생산케 하고 기술적인 점검을 한 것이라는 게 노조측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노조측의 주장대로라면 상하이차는 쌍용차를 인수해 쌍용차의 첨단 부품 설계도를 손쉽게 손에 넣고 이를 중국에서 생산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기술유출이다.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자본 중 상당수는 이처럼 단기간에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거나 핵심기술 유출 등을 목적으로 한국기업 M&A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특히 칼 아이칸이나 소버린, 론스타, 칼라일 등과 같은 외국계 투기성 자본은 대부분 2~3년 정도의 기간동안 투자한 원금과 막대한 이익금을 챙겨 떠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나 한국경제의 건전성과 경쟁력은 뒷전이다.
이때문에 이같은 투기성 외국자본의 공격이 진행됐다가 빠져나가면 상당수의 당사자 기업과 협력업체들이 경쟁력을 잃거나 대규모 구조조정의 후유증으로 시름하게 된다.
이미 쌍용차는 지난 7월 상하이차가 쌍용차 전체 임직원 7천675명(정규직 기준)중 985명을 구조조정하겠다고 통보하면서 구조조정의 위기에 휩싸였다. 노조측의 주장대로 핵심기술이 유출됐다면 쌍용차와 협력업체들의 미래는 `죽은 목숨'이다.
지난 2003년에 외환은행을 매입한 론스타는 다음해 외환은행과 외환카드 합병 당시 희망퇴직 신청인원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치자 직장폐쇄와 정리해고라는 서슬퍼런 칼을 빼들었다. 휴대폰 문자서비스를 이용한 정리해고 통보라는 신종 기법도 도입했고, 직원들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바라보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이처럼 최근들어 부쩍 외국계 자본의 무시무시한(?) 공격을 많이 목격한 우리기업들은 스스로 자기방어에 나서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상장기업들이 외국계자본의 소리없는 주식매입에 대비해 내놓은 대비책은 바로 대규모의 자사주 매입. 지난해에만 상장 대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4조8천305억원을 쏟아부었고, KT&G 사태가 불거진 올해는 5월초까지만 31개 기업이 3조8천984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했거나 매입할 계획이라고 공시했다.
올해 `적대적 M&A설'에 시달렸던 포스코의 경우 작년보다 두배나 많은 9천억원을 자사주 매입에 투입하고 있다. 포스코는 KT&G처럼 소유 분산이 잘 이뤄져 지배구조 우량기업으로 꼽히는 대신 외부 자본의 M&A공격에는 취약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장기적으로 총 120억달러를 투입하는 인도 제철소 건설사업을 눈앞에 두고 막대한 자사주 매입에 나선 것은 상당한 무리가 가는 일이지만 KT&G 사태와 M&A설을 겪어본 입장에서는 더한 출혈이라도 감수해야 할 판이다. 포스코 외에도 삼성전자가 올 5월까지만 1조8천582억원을 자사주 취득에 쏟아부었고, SK도 5천121억원어치의 자기주식을 사들였다.
사실 이같은 대기업의 자금들은 장기적으로 볼때 연구개발과 시설투자 같은 경쟁력 강화에 투자됐어야 하는 자금이란 점을 감안하면 외국계자본의 폐해는 기업의 경쟁력 약화에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계 자본의 기업 장악은 또 기업의 공공성을 훼손해 서민들과 힘없는 중소기업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외국인 지분이 높거나 외국자본의 손에 넘어간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올해 상반기 실적. 국민은행은 올 상반기에 1조5천8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지난해 동기보다 77.5%가 증가했다. 외환은행도 올해 상반기 순익이 9천284억원에 달해 지난해 같은 기간 6천460억원 보다 2천824억원이나 늘었다. 신한지주도 올해 상반기에만 1조721억원의 순익을 기록했다.
이같은 실적은 기업과 주주의 입장에서 볼때는 긍정적인 것이지만, 공공성을 담보해야 할 금융기관이 이자와 수수료 등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는 것은 서민과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다. 이익의 상당부분이 막대한 지분을 갖고 있는 외국계 자본에게 돌아가야 하고, 그것은 대부분 배고픈 서민과 중소기업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은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외국인들의 배를 불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