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미군들 내려온다며? 그런데 왜 못 내려보낸데?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국가 정책이라면 우리 무지렁이들은 누굴 믿고 살란 말이야?"

미군기지 재배치 일정이 3~5년까지 미뤄질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14일 오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K-6(캠프 험프리)미군기지 주변 상가. 오가는 사람 없는 이곳 거리는 잔뜩 찌푸린 하늘 만큼이나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유흥주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미군 들어온다는 소리만 믿고 한달에 700만원씩 손해보면서도 버텨왔어. 그런데 이제와서 5년을 더 기다리라면 한달에 100만원이 넘는 이자를 어떻게 감당하냐구"라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끝도 없이 쏟아냈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이날 오전 4시께에는 상가 중심지역에 위치한 A유흥주점에 불까지 나 인근 10개 상가를 태우고 1시간20분만에 꺼졌다. 한국외국인관광시설협회 이훈희 평택지부장은 "말도 안되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하루종일 어수선한데 상가 심장부에 큰 불까지 나 상인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면서 "분위기를 추스르는대로 상인들의 의견을 모아 정부를 상대로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 부동산 업계도 폭탄을 맞았다. 미군 기지 주변 송화리와 근내리, 대추리로 들어가는 길목인 원정리 주변 도로 곳곳에는 'Room for Rent'(세 놓음)라고 적힌 현수막과 하릴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건축자재 더미가 눈에 띄었다. 이곳으로 이전할 미군들을 겨냥해 임대주택 1천500여세대가 들어섰지만 실입주율은 10%에도 못미치는 실정이다.

부동산 업자들은 수억원씩 투자해 임대주택을 지은 중소업체 및 개인들의 줄도산을 예고하며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한미부동산협의회 이헌현 회장은 "이전을 추진하다가 걸림돌이 생겨 조금 늦어진다면 몇 년이고 기다릴 수 있지만 시작도 하기전에 협의가 안돼 미뤄진다니 이 많은 주택들이 수년간 사람이 안사는 흉가로 전락할 판"이라고 했다.

한편 수십년간 삶의 터전이었던 논밭을 수용당한 대추리 주민들 역시 불만을 토로했다.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 김택균 사무국장은 "고향을 지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은 찾았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보면서도 "대책없이 늦어질줄 알았다면 (정부가) 대추리 주민들과 좀더 충분한 대화를 했어야 했다"고 비난했다.

논에 퇴비를 주던 70대 촌부도 "우리가 울며불며 대화를 요구할 때는 '협상 불가'라며 코빼기도 안보이며 못살게 굴던 사람들이 바로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양반님네들"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