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영환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우리는 흔히 농촌을 마음의 고향이라고 부른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을 생명(生命) 또는 안보(安保)산업이라고도 말한다. 농촌출신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농업·농촌문제를 생각할 때는 이성보다는 감성, 추억이 앞선다. 유년기를 농촌에서 보낸 도시민이라면 더욱 그렇다. 기자는 얼마전 농협중앙회가 한때 인천을 연고로 했다가 현재 수원을 임시 연고지로 삼고 있는 프로 야구단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한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흥분했다.

구단 명칭도 '농촌사랑 야구단'이니 기자뿐 아니라 농업·농촌을 사랑하는 도시민에게는 기대와 설렘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인수할 현대 유니콘스는 한국 시리즈 4차례 정상에 오른 인천·경기 출신의 명문 프로구단이 아니던가? 결국 농협의 졸속추진과 농민 생산자단체, 농림부의 조직적인 반발에 부딪혀 '농촌사랑 야구단'창단은 나흘 만에 '없던 일'로 됐다. 그렇지만 "농촌사랑운동의 범국민적 확산과 스포츠마케팅을 통해 '경제사업' 즉 우리 농산물의 판매를 확산시키겠다"는 농협의 영업전략은 공감받기에 충분했다. 잠시나마 야구단인수를 통해 농촌의 부활(?)을 꿈꿔온 도시민에게 긴 허탈감으로 다가왔다.

농협이 자회사 '컨소시엄'형태로 존폐위기에 빠진 프로야구단을 인수해 잠자는 도시민의 농촌사랑정신을 일깨울 수도 있었다. 도시민의 농촌사랑은 곧 지지부진한 농협경제사업의 활성화로 이어져 농산물판매 수익금이 농민에게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론 연간 200억원 정도의 프로야구단 운영비가 농민 생산자단체가 우려한 대로 농민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론 분명 농촌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장밋빛' 구상만은 아니다.

농협이 감성이 아닌 이성을 갖고 중·장기 운영계획 수립과 의견수렴 절차 등 충분한 검토과정을 거쳐 야구단을 인수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혹시 농협과 농림부가 야구단 인수과정처럼 우리 농업·농촌문제를 '졸속'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을 정도다. 잘 알다시피 지금 우리의 농업·농촌현실은 어떤가. 젊은이가 떠난 상당수 농촌은 '70살 청년'이 버겁게 농사를 짓고 있다. 떠안은 빚과 자식농사까지 걱정하면서…. 정부도 매년 수조원의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나아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최근에는 농촌기반 자체를 흔들 농수산물 완전개방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농업·농촌의 위기는 60, 70년대 우리 산업을 이끌었던 농기계, 농약·비료·축산·종자 등 관련 산업 자체를 붕괴시키고 있다. 그야말로 '농'(農)의 동반추락이다. 이같은 '농'의 위기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곳이 현재로선 농협뿐이다. 농민이 주인인 농협이 시중은행과 같은 은행으로만 존재한다면 머지않아 도시민은 농업·농촌사랑과 농협사랑을 구분할 것이다. 농협이 농촌·농업사랑에 힘입어 커갈 수 없다는 뜻이다. 농협은 설립취지부터 은행(신용)업무와 함께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제·지도·교육업무를 맡고 있다. 은행에서 돈을 벌어 농산물·농자재 판매와 영농지도교육에 힘쓴다는 이유로 도시민은 농협에 관대했고, 가슴으로 대했다. '농촌사랑 야구단'을 만든다는 것도 정부의 농협신용업무와 경제·지도업무분리 추진 방침과 함께 농협이 경제·지도사업을 신용(은행)사업 만큼이나 신경을 쓰겠다는 뜻으로 이해돼 많은 도시민의 감성을 자극했던 것이 사실이다.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농협조직이 개혁적이고 능동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한 느낌이었다. 전국 곳곳에 산재한 농협의 유통매장인 하나로 클럽이나 마트가 재벌기업 또는 다국적기업 소유 대형 할인점과 당당히 경쟁하고, 목우촌 고기, 농협 인삼 등 농협 농산물브랜드 가치가 높아진다면 농민만 좋아하겠는가. 농협이 프로야구단 인수파문을 계기로 우리 농업·농촌 살리는 데 더 힘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농업·농촌이 선장잃은 현대 유니콘스 같은 운명이 돼서는 안된다. 현대 유니콘스 파이팅! 농협 파이팅! 농업·농촌 파이팅!

/안 영 환(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