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경기도혈액원 혈액재고현황판에 O형과 B형의 혈액이 2~4유닛(unit)만 보유하고 있을 뿐 혈액재고량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김종택기자·jongtaek@kyeongin.com  
 
헌혈 감소 현상이 심각하다. 단순히 헌혈자 감소로 혈액 공급이 줄어드는 차원이 아니다. 헌혈 감소 때문에 정부의 혈액 정책이 뒷걸음질치는가 하면 헌혈시스템마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혈액과 관련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 심각한 장애를 앓고있는 셈이다. 낭떠러지로 내몰리고 있는 헌혈 실태와 문제점을 긴급 진단했다. <편집자주>

 
 
이달 초순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에는 '동원령'이 선포됐다. A형 혈액 보유량이 하루 소요량(약 130유닛·unit)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같은 혈액형을 가진 직원들이 긴급헌혈에 나서 급한 불은 껐지만 이번처럼 '피가 모자라' 적십자사에 비상이 걸리는 일은 과거엔 거의 없었다. 그만큼 혈액부족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실제로 이번 겨울은 헌혈 사상 최악의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지난 1~2월 두달동안 경기지역(경기도혈액원 관할) 헌혈자수는 2만2천500여명. 지난해 같은 기간 2만3천400여명에 비해 1천여명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다행히 개인 헌혈은 2005년도 겨울 당시 1만1천600여명에서 지난해와 올해 각각 1만3천여명대로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단체 헌혈 감소치를 개인 헌혈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단체헌혈의 경우 1만400여명(2005년도 1~2월)에서 9천900여명(2006년)으로, 올해엔 8천800여명까지 감소했다.

혈액원과 병원 등 현장에서 체감하는 혈액 부족 문제는 수치보다 훨씬 심각하다.

자체 혈액은행을 운영중인 대형 병원의 경우 재고량이 부족해 당장 1∼2일뒤 수술 차질을 우려하고 있고 산부인과 등 작은 병원들은 도혈액원에 'SOS'를 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성남 A병원의 경우 현재 혈액형별로 재고량이 2∼3일분에 불과하고 성남의 또다른 B병원도 적정량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부대가 많은 경기북부지역 병원들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말라리아 발병이 우려되는 4∼5월에는 최악의 상황까지 우려되고 있다.

A병원 관계자는 "얼마전 혈액이 5팩밖에 남지 않아 수술이 결정된 환자 2명 가운데 1명을 선택해 수술이 이뤄진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의정부 B병원 관계자는 "여유분이 없이 계속 (혈액이) 모자란 상태"라며 "혹시라도 수혈량이 많은 응급환자가 있거나 수술이 몰릴까봐 내내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혈액 부족사태가 심각해지자 혈액관리본부는 이번 달부터 알부민 등 간접수혈제제를 만들기 위한 혈장 헌혈을 최소화하고 수혈을 위한 전혈중심의 헌혈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얼마전까지만 해도 7대3이었던 전혈대 혈장헌혈의 비율이 9대1까지 올라가면서 26일 오전 현재 도혈액원의 혈액보유량은 690여유닛(1일 평균 소요량 400유닛)으로 일단 '비상사태'는 벗어난 실정이다.

그러나 한해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혈장 수입량(2005년도 혈장 수입량 29만여ℓ·270억원 상당)을 줄여 혈액 자급자족을 실현한다는 '헌혈선진국'의 꿈은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이다.

도혈액원 관계자는 "일단 동절기가 지났기 때문에 고비는 넘긴 상태"라며 "수혈을 위한 전혈 중심으로 헌혈을 받고있어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