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막판 물량 공세와 '지역 안배' 등을 주장하는 델리의 공격에 한때 바짝 긴장하기도 했다. 인천은 'Even Onward with Incheon(인천과 함께 미래를 향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고, 아시아 스포츠 약소국을 지원하는 내용인 '비전(VISION) 2014'를 강조했다.
인천과 델리의 운명은 17일 쿠웨이트 J W 메리엇호텔에서 열린 OCA 총회장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알 사바 OCA 의장은 2014년 아시안게임 개최지가 최종 확정됐다고 밝힌 뒤 '인천'을 외쳤다. 인천은 OCA 회원국 투표에서 델리보다 19표를 더 얻었다.
알 사바 OCA 의장이 '인천'을 호명하자 '인천아시안게임유치단' 관계자들은 감격의 포옹을 했고, 함성과 박수가 이어졌다. 안상수 인천시장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2014년 아시안게임 개최권 획득은 인천시와 시민이 지난 2년 가까이 총력을 쏟은 값진 결실이었다.
인천이 총회장에서 공개한 프레젠테이션(PT)의 오프닝과 엔딩 동영상 주제는 아시안게임을 반드시 인천에 유치하겠다는 뜨거운 시민의 열기였다. OCA 실사단이 지난해 인천을 방문했을 때 환영하는 모습과 아시안게임 유치를 기원하는 시민의 서명운동 장면 등이 동영상에 생생하게 담겼다. PT가 끝난 뒤, 안상수 시장과 박창규 시의회 의장은 시민의 서명이 새겨진 동판을 알 사바 OCA 의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스포츠 약소국들을 보듬어 안고 2014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겠다는 '비전 2014'가 OCA 회원국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각 국 선수들이 최적의 환경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다는 점도 표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인천이 아시안게임 유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3년도부터다.
인천은 사실 당시 KOC의 권유를 받아 2010년 대회유치를 준비했다. 그러나 중국이 2010년 광저우에서 아시안게임 유치를 제의하며 KOC에 협조를 구해왔고, KOC도 중국과 우호적 협조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을 느껴 2014년으로 미룬 것이다. 2010년은 2002년 부산대회 이후 너무 대회유치가 빠르다는 판단에 따른 이유도 있다.
인천시의 공식적인 아시안게임 유치활동은 2005년 6월23일 정부승인을 거쳐 6월29일 OCA에 유치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2005년 12월 유치위원회가 발족했으나 사실상 본격적인 해외 유치활동은 위원회 발족 이전인 유치단 시절부터 시작된 셈이다.
인천은 2005년 9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OCA 총회에 참가하면서 유치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동아시아대회 등 권역별대회 5차례, 권역별 스포츠포럼 5차례, OCA 총회 및 집행위원회 3차례, 기타 권역별 순회방문 등 총 30여 차례의 해외 유치활동을 벌였다. 비행거리상으로 따진다면 거의 지구를 세 바퀴쯤은 돌았다.
델리가 카타르 도하,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등과 함께 2010년 유치 신청 도시였음을 감안하면 인천의 추월속도는 초고속이었다.
특히 인천은 지난해 OCA평가단 실사에서도 매우 높은 평점을 받았다. OCA평가단 환영식을 겸해 열린 '유치기원 열린음악회'에는 2만5천여 명의 인파가 참석, 시민 열기를 대변해 줬다. 인천은 세계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문학월드컵경기장과 가변식 좌석이 인상적인 다목적 기능의 삼산월드체육관 등 체육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지난해 연말 국회에서 결성된 '2014아시안게임유치특별위원회'는 유치 활동에 가속을 붙였다. 15명의 특위위원들은 유치위원들과 함께 순방유치활동을 벌이며 지난 3월 접전지역인 서아시아(중동) 지역에서 의외의 성과를 얻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