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환호성 속에 그동안의 힘들었던 기억들이 한 순간에 잊히고 있다. 강원도 평창을 인천보다 더 지원했던 정부에 대한 서운한 마음도, 아시안게임 인천유치를 둘러싼 갖가지 억측과 논란도 봄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다. 승자만이 갖는 기쁨이요, 관용이 아닌가 싶다.
지금 인천에서는 몇 사람만 모여도 '2014 아시안게임 인천유치'에 대한 얘기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렇다. 인천은 해냈다. 정말로 대단한 일이다. 270만 인구의 인천이 11억 인구의 인도를 누른 것이다. 인도 델리의 경우 인도 정부가 유치운동 전면에 나선 반면 인천은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등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이었기에 승리의 기쁨이 더욱 크게 느껴지고 있다.
인천의 아시안게임 유치도전은 지난 2003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기억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문을 연 지 1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기였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국제행사가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시 2010 아시안게임 유치전은 그야말로 치열했다. 국내에서는 인천, 대구, 대전이 희망했다. 그해 12월 대한올림픽위원회는 아시아올림픽위원회(OCA)에 유치의향서를 제출했다. 한국과 요르단, 중국 광저우, 말레이시아 등 4개국이 경합에 나선 것이다. 2006 아시안게임 유치에 실패했던 말레이시아는 일찌감치 유치준비에 나섰고 중국 광저우가 다크호스로 부각됐다. 2010 아시안게임 유치의 행운은 중국 광저우가 가져갔다. 한국은 막판에 '아시아스포츠의 균형발전'이란 명분을 내세워 유치신청을 포기했다.
하지만 인천은 꿈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국제비즈니스 도시건설을 둘러싸고 '총탄없는 전쟁'을 치르는 경쟁대국 중국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아시안게임까지 유치한 것을 보고 재도전의 의지를 불태웠던 것이다.
2005년 다시 기회를 만들었다. 대한올림픽위원회를 집요하게 설득한 끝에 단일 후보도시로 인천이 결정된 것이다. 이때부터 2007년 4월 17일 최종 개최지로 낙점받기까지 인천시민은 땀과 열정을 쏟아부었다. 2014 아시안게임 인천 유치는 결코 기적이나 우연이 아닌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인천은 그동안 많은 꿈을 꿔 왔고,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도전정신으로 어려움을 헤쳐왔다. 그리고 그 꿈을 하나 하나 이뤄가고 있다.
최근들어 '송도국제도시'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국내 대기업 CEO는 물론이고 행정기관의 간부, 연구기관, 학계, 외국의 다국적 기업 간부 등이 연일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건설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우리나라 중앙정부와 지방의 관료, 기업인 등이 두바이의 성공을 부러워하며 개발 과정에 관심을 보이듯이 외국의 도시들도 이제는 인천경제자유구역의 개발 과정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직 완성된 작품이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인천 송도국제도시가 이만큼이라도 세인의 관심을 갖게 되기까지는 숱한 어려움이 많았다. 80년대 중반부터 인천은 지금의 모습, 아니 이보다 더 경쟁력을 갖춘 국제도시 건설을 꿈꿨다. 바다를 메우는데만도 수년이 걸렸다. 중앙정부 지원없이 시민의 혈세로 땅을 만들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애물단지 송도였다. 그 송도에 이제 오피스텔 분양을 받으려고 5천 대 1의 경쟁률을 보이며 사람과 돈이 몰려들고 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한 인천의 도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2014 아시안게임의 인천·평양 공동개최를 비롯한 대회의 성공적 개최, 가정오거리를 비롯한 구도심 재생사업, 2009년 세계도시엑스포, 영어 상용화가 가능한 도시 등의 꿈이 반드시 이뤄지도록 또 다시 힘을 내자. 우린 할 수 있다.
/장 철 순(인천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