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공개경쟁입찰, 무엇이 문제인가

중소기업청과 조달청은 단체수의계약제를 폐지하고 완전경쟁입찰제를 전면 시행하면서 이에대한 명분으로 '중소기업의 기술력 향상'을 내세웠다.

그러나 정부의 완전경쟁 입찰제 전면 시행의 명분은 4개월이 지난 현재, 당초 취지가 무색해졌다.

여과기와 믹서기 등을 생산하는 인천 남동산단의 (주)U기계는 작년까지 연구시설 확충과 최신설비 투자금으로 매년 5억원 가량을 투자해왔다. 연평균 매출액 150억원에 이같은 액수의 연구개발비는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지만, 미래시장을 생각해 투자비를 아끼지 않았다.

▲ 공개경쟁입찰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기업들의 출혈경쟁이 불가피하게 된 가운데 규모상 각종 조건을 충족하기 힘든 영세업체들의 부담이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임열수기자·pplys@kyeongin.com

그러나 단체수의계약제가 폐지된 올해 이 업체는 R&D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전체 매출액의 10% 가량을 차지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원을 창출했던 공공기관 수주가 지난 1월부터 전면 끊겼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올해 완전 경쟁입찰에 7~8건 응찰했지만 한건도 수주하지 못했다. 이 회사 대표는 "전문메이커로 관공서 또는 거래처가 원하는 품질 수준을 맞추기 위해 매년 연구개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사실상 최저가로 낙찰되는 경쟁입찰제는 중소기업들의 기술향상 의지를 오히려 꺾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의 인쇄기업 B사 관계자도 "공개경쟁입찰도 결국은 양질의 제품을 싸게 구매하는 것이 목적일텐데 현재 제도로는 업체들의 가격경쟁만 부추겨 부실제품 양산으로 내몰고 있다"며 "벌써부터 대형업체가 시장을 독식하고 재하청하는 분위기"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인천 남동구 구월동의 A기획사의 경우, 지난해 전체 매출액 1억2천만원 가운데 30% 가량을 단체수의계약으로 수주했지만 올해는 실적이 전무하다. 인천시 등이 발주한 10여건의 경쟁입찰에 7번 응찰했지만 한건도 낙찰받지 못한 것이다. 이 업체 윤모 차장은 "시·군·구가 발행하는 홍보물 등은 단순 인쇄·제조품이 아닌 전략과 콘텐츠를 갖고 인천을 알리는 얼굴"이라며 "그러나 편집과 디자인 등 지식재산에 대한 평가 요소는 없고 오로지 저가 가격경쟁으로 내몰고 있어 창작물의 질적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경기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입찰 심사에서 기업들의 신용평가와 신인도 등이 크게 반영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외적 규모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이때문에 실력은 우수하지만 규모가 영세한 업체들이 낙찰받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조달청이 중소기업들의 공공구매 조달시장 참여를 높이고 판로지원을 위해 마련한 다수공급자물품계약(MAS)도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조달청은 지난 2월 조달청 홈페이지에 MAS(다수공급자계약제)를 도입했다. MAS는 품질이나 성능·효율이 같거나 유사한 제품을 공급하는 2인 이상 다수의 공급자가 제품을 올리면 수요자가 구매하는 일종의 쇼핑몰이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몰의 한계 때문에 성능향상에 대한 노력보다는 외관 디자인 등에 치중해 결국 공공구매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품질경쟁이 뒷전으로 밀렸다. 제품의 품질경쟁과 원가절감을 통한 가격경쟁보다 수요기관에 대한 영업경쟁에 치중할 경우 유착관계가 형성될 가능성도 지적됐다.

인천지방중소기업청 관계자는 "매년 중소기업 100만개가 창업되고 80여만개가 폐업할 만큼 중소기업계는 과당 및 출혈경쟁이 심각하다"며 "중소기업간 완전 경쟁이 핵심인 단체수의계약제 폐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