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매송면에서 나고 자란 고 당선자의 학력은 반월중학교 졸업이 전부다. 물론 서울대대학원까지 수료하고 명예박사학위도 받았지만 공식 학력은 중졸이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가정환경 탓에 일찌감치 학업의 꿈을 접은 것이다.
불우한 청춘이 그렇듯, 한 때는 방황도 했지만 18살때 홍농종묘 경기총판에 입사하면서 삶의 궤적이 바뀌게 된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어느덧 종자 생산과 유통 전 분야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다. 차곡차곡 경력을 쌓은 그는 1981년 '농우 바이오'의 전신인 '농우 종묘'를 창업, 꿈에도 그리던 CEO가 됐다.
IMF의 한파가 거셌던 1998년, 기로에 선 그는 돈이 아닌 '토종씨앗의 자존심'을 택했다.
국내 매출 1·2·3위인 흥농·서울·중앙종묘가 멕시코(세미니스)와 스위스(신젠타) 등 다국적 기업에 줄줄이 넘어갔다.
네덜란드계 다국적 기업은 고 당선자에게 농우종묘를 넘겨주는 대가로 1천억원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하지만 그는 "종자 산업은 우리나라 농업의 기반"이라며 오히려 '종자 주권·농업 주권'을 선언했다. 농우종묘는 이후 '민족기업'으로 불리고 있다.
2000년 4월에는 '농우 바이오'라는 새 이름으로 코스닥에 상장, R&D와 품종 생산, 선진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토종기업으로 거듭났다.2004년부터 경기도새마을회를 이끄는 등 봉사와 나눔에도 열정적이다.
토종 씨앗의 자존심으로 통하는 고 당선자는 "FTA 타결로 가장 피해가 큰 농민들의 버팀목이 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