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내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둘째날 저녁 평양 청년궁전에서 북측이 공연한 가극 '춘향전'이다. 춘향과 이 도령의 애절한 사랑을 한수 한수 시로 자막을 통해 관중들을 매료시켰고 배경 음악인 관현악과 남녀 합창이 하도 가늘고 세밀해서 스며드는 감흥을 감당하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는 남측 대표들이 거반이었다.

우리 모두가 이미 아는 내용이건만 어쩌면 저토록 애타는 감성표현과 시로 모든 관중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올려놓을 수 있을까! 평시 TV를 통해 무뚝뚝하고 냉정하다고 여겨왔던 모 국회의원은 벌써 훌쩍이고 있었다.

가극 '춘향전'의 공연무대 구성에 있어 공간 배치와 조명, 세심한 무대 장치와 꾸밈, 그 정교함에 남측 예술인도 극찬했다. 나는 생각했다. 저토록 가슴을 울려놓고 내 손을 덥석 잡으면 내 어이 그 손을 뿌리칠 수 있을까? 춘향전 때문에 한잔 기울이고 잠을 청하는 이가 많은 밤이었다.

3일째 마지막 날 일행은 평양 외곽에 있는 동명왕릉과 평양시내 대동강을 둘러보며 오전 시간을 보냈고, 점심에는 그 유명하다는 평양 옥류관에 들렀다. 필자는 평양냉면과 평양쟁반냉면 두 그릇을 먹었고, 어떤 남측 대표단은 게 눈 감추듯 세 그릇을 먹는 이도 있었다. 양이 적어서 두 그릇을 먹은 것이 아니다. 옥류관 냉면은 과연 소문대로 맛이 있었다.

우리는 냉면 먹을 때 편리하도록 가위로 잘라서 먹곤 하나 북측에서는 냉면발 자체가 장수를 의미하기 때문에 잘라 먹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긴 면을 먹는다고 한다.

음식 얘기가 나왔으니 평양에서 둘째날 먹은 음식 '단고기'에 대해 언급코자 한다. 단고기는 개고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음식이 개고기에서 단고기가 된 것은 어느 날 김일성 장군께서 이 음식을 먹고 참으로 맛이 있어 적절한 이름을 찾던 중 고기맛이 '달다' '훌륭하다'라는 뜻으로 단고기란 명칭을 쓰게 됐다고 한다.

단고기 요리는 6가지 정도로 분류되어 코스 요리로 나오는데 살코기, 껍데기, 다리원심, 내장, 거시기, 장국 순으로 나왔다. 필자는 3가지 정도 먹으니까 배가 불러 단고기를 다 먹지 못했다.

셋째날 저녁 만찬에서 먹었던 가물치회 또한 처음 먹어 보았는데 그 맛은 자연산 우럭과 비슷한 맛으로 진미였다.

폐막식전 류경 정주영체육관(정주영 회장이 체육관 기증)에서 남측대표, 북측대표, 해외대표가 함께 섞여 하나팀과 우리팀으로 간소한 경기를 하고 폐막식과 함께 6·15선언 5돌 기념행사를 모두 끝마쳤다.

아쉬운 석별을 노래로 부르며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고 술잔을 나누며 서로를 껴안고 눈물을 훔치며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통일의 절절한 염원을 담고 그렇게 평양의 밤은 깊어만 갔다.

평양은 분명 변화하고 있었다.

거리의 상점들, 평양 시민들의 밝은 옷매무새, 노점에서 아이스크림과 청량음료를 사들고 좋아라 웃는 북측아이들, 마음이 통하면 물건값도 깎아주는 점원 등 통일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이 가슴 벅차게 느껴지는 건 비단 필자뿐만이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