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유명 게임 제작업체에 입사한 J씨(여)는 평소 주량이 맥주 2잔으로 소주는 전혀 마시지 못했지만 입사 전부터 관례상 `술면접'을 치러야 한다는 간부들의 말에 따라 새벽까지 술을 마셔야 했다.
입사 첫날 자신의 입사 환영 회식에서는 부서장인 최모씨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흑기사를 하는 남자 직원과 키스를 시키겠다"고 해 억지로 소주 2~3잔을 마셨고 5월 회식 때에는 생리 중이었음에도 최씨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셔야 했다.
이 같은 술자리는 J씨가 입사한 이후 1주일에 2회 이상 별 안건도 없이 회의 명목으로 계속됐고 J씨와 직원들은 새벽 3~4시까지 술을 마셔야 했다. 부서장의 말을 듣지 않으면 `기피 부서'에 보낼 것 같아 거절할 수도 없었다.
2년전 위염을 앓은 적이 있는 J씨는 급기야 미리 준비한 위 보호약을 복용해가며 술을 마셨고 술자리 도중 토한 것은 물론이고 위염 치료약을 다시 복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부서장은 술 강요는 물론 술자리에서 J씨의 신체를 만지는 등의 신체접촉과 성희롱 발언을 하는가 하면 담배를 피우라고 강요하기도 하고 워크숍에 가서는 여직원들이 자는 방에 와서 같이 자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참다 못한 J씨는 입사 두달만에 장출혈을 이유로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고 사직의사를 표시하면서 회사 측에 최씨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최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서울고법 민사26부(강영호 부장판사)는 J씨가 최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700만원의 지급을 판결한 1심을 깨고 "최씨는 원고에게 3천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체질.종교.개인 사정 때문에 술을 전혀 못하거나 조금밖에 마시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의사에 반해 음주를 강요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건강이나 신념 또는 개인적인 생활을 포기하라고 강요하고 인격적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다"며 "상대방이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면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가 소주를 전혀 못한다고 분명하게 밝혔음에도 1주일에 2회 이상 마련된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술을 강요함으로써 심한 정신적 고통을 느끼게 하고 건강까지 해치게 한 것은 원고에 대한 인격권 침해와 신체에 대한 상해를 가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회사원도 근로관계 법령 및 고용관계에서 정한 근무시간 이외에는 여가를 자유롭게 사용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데도 원고가 새벽까지 귀가하지 못한 것은 피고의 평소 언행에 의한 강요된 결과로 원고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침해당한 것은 경험칙상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씨는 2004년 6월 회사로부터 징계면직됐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고소돼 2005년 6월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