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5일 오후, 김포시 하성면 석탄1리의 한 야산. 풀이 거의 자라지 않은 산 자락의 무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김순창(69·가명)씨의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그의 어머니는 40대였던 지난 1950년 11월 초 마을 청년단에게 희생당했다.
김씨는 "이 부근에서 돌아가셨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무덤 안에 계시다는 걸 안 건 불과 5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와 초등학교 동창 사이인 강정순(68·여·가명)씨의 어머니(당시 38)와 언니(〃 18), 여동생(〃 8)도 이 무덤에 잠들어있다. 강씨 가족들도 비슷한 시기에 희생당했다. 강씨는 "원래 골짜기였던 이곳에 희생자 7∼8명이 뒤엉켜 있어 그냥 흙을 밀어넣고 무덤처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무덤이 하나라 김씨와 강씨는 5년째 함께 무덤을 관리하고 있다. 강씨는 "우리 말고 다른 유족들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면서 "주위에 가시나무 덩굴이 있고, 풀과 나무도 많은데 이상하게 무덤 주위에만 풀이 자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무덤을 함께 쓰는 유족들은 치안대에 가족이 끌려간 1950년 10월 20일을 똑같이 기일로 정했다.
하성면에서 만난 유족들에 따르면 그해 10월경 마을 곳곳에서 청년단에 의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됐다. 석탄리 한강변과 현 태산가족공원 자리, 하성초등학교 뒤쪽 등이 대표적인 학살지로 학살규모는 수백 명에 이른다. 태산은 인민군 주둔지였기에 인민군이 퇴각한 뒤 부역혐의 희생자 규모가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군이 전쟁 중 입수한 '북한군 전투명령 지령'은 태산에 인민군본부가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한 건 그 많은 유족들 중 단 한 명 뿐이다. 대부분 당시 일을 쉬쉬하며 이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제발 가명을 써야 한다. 가슴에 묻어뒀던 말을 털어놨지만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 불안하다"는 강씨의 말처럼 유족들은 여전히 57년전의 상처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